로스트 인 더스트 (2016): 후회와 슬픔의 감정도 낡아서 없어집니다
로스트 인 더스트 (Hell or High Water , 2016)
감독: 데이빗 맥켄지
주연: 크리스 파인, 벤 포스터, 제프 브리지스

간단소개: 현실적이고 냉정한 동생 토비(크리스 파인)과 감정적인 형 태너(벤 포스터)는 은행에 소유권이 넘어가게 된 어머니의 농장을 구하기 위해 은행강도를 벌인다. 백전노장 보안관 해밀턴 (제프 브리지스)와 파트너 알베르토가 그들의 뒤를 쫓는다.
많은 영화들은 감정을 밖으로 내보냅니다. 주인공의 생각, 의견을 직접 말하기도 하고 위기를 겪는 주인공을 통해서 발전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로스트 인 더스트'는 흔치 않게 이런 의견을 보여주기보다는 가라 앉히는 영화입니다.
제목 '로스트 인 더스트'는 한국 번역본에 붙은 제목입니다. 원제는 'Hell or High Water'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정도의 뜻입니다.
글에는 영화의 중요한 내용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스포주의)
| 닳아버린 한탄과 체념
주인공 형제 토비와 태너는 은행에 저당잡힌 어머니 농장의 권리를 찾아오기 위해서 은행을 텁니다. 그들의 목적은 엄청나게 많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의 농장을 찾아오기 위한 4만 5천달러만 있으면 되죠. 이성적이고 계획적인 동생 토비(크리스 파인)은 CCTV가 설치되지 않은 은행만을 대상으로, 사람이 없는 아침시간, 지폐 번호를 적어놓지 않을 만한
소액권만을 훔쳐서 나오는 방식으로 조금씩 돈을 훔칩니다.

돈줄을 쥐고 있는 은행들은 크지 않은 돈을 빌려주고 토지와 농장의 권리를 지역 주민들로부터 빼앗았습니다. 땅으로부터 나온 모든 부산물에 대한 권리도 은행으로 넘어갔죠. 땅을 잃은 주민들은 토지 소유자의 고용을 받는 사람이 되거나 빈곤층이 되어갔습니다. 영화는 이렇게 뺏기는 자들의 입장의 한탄을 많이 말해줍니다.
원주민인 인디언을 몰아내고 정착한 미국백인부터, 미국주민들의 땅을 빼앗은 거대자본까지. 이들은 착취당하는 자신들의 입장을 딛고 대항하기 보다는 한탄하고 체념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체념하고 포기하지 않는 인물이 토비와 태너입니다.

거친 흙먼지를 뒤집어 쓴 자동차처럼 지금은 어떻게 움직이고 쓸 수는 있지만, 결국 해결책이 없이 낡고 닳아서 없어질 상황에 처한 인물들을 많이 이야기합니다. 토비의 전부인, 레인저 해밀턴이 만나게 되는 많은 인물들이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한탄하고 화를 내지만 바꾸거나 해결하지 못하고 체념하며 가라앉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터전을 침식해오는 세력에 대항하는 것은 영화 속에서 토비가 유일합니다. 은행이 몇푼 안되는 빚으로 어머니의 농장을 빼앗아가려 하는데, 바로 그 은행을 털어서 빚을 갚는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기발한 계획에 대범하기까지 하지만, 결국 초짜 은행강도가 벌이는 일은 한계와 실수가 있을수밖에 없었습니다. 토비와 태넌도 그들의 강도짓이 잡힐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린 아마 안될거야', '현실은 시궁창'같이 지나가는 드립처럼 들리지만 미국 사막 한가운데의 형제와 현시대 서울의 사람들이 공감하는 감정인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만 그런 건 아닌 듯합니다.
| 절제된 동료애와 가족애
토비와 태너 형제는 마지막으로 들어간 은행에서 계획이 틀어져서 경찰과 지역주민들에게 쫓기게 됩니다. 형제들을 쫓던 보안관들 해밀턴과 알베르도가 형제를 잡으려 합니다. 영화 속에서 나타나는 남자 둘의 관계는 누구보다 끈끈하지만
절대 과하지 않고 조용합니다.
동생 토비는 감정적이고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형 태너때문에 흥분할 때도 있지만, 형을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나서고 그의 뒤를 봐줍니다. 태너도 물론 은행강도도 할 만큼 동생을 생각합니다.

은행강도를 쫓는 레인저 둘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퇴를 보름남기고 은행강도사건을 맡은 레인저 해밀턴은 그의
인디언 파트너 알베르토를 놀리는 맛에 살죠. 호텔에서 알베르토가 기독교방송을 보고 있으니까, 너네 인디언은 모닥불 연기 피워놓고 주위를 빙빙돌고 주문 외워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키득거리는 모습입니다. 물론 알베르토도 이 영감탱이와 정이 많이 들어서 뭐라고 하던 그러려니 하는 수준입니다.

은행강도 형제 둘과 이들을 잡으려는 레인저 둘이 만나게 되는 것은 영화의 진행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경찰과 강도의 대치과정에서 총격전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죽게 됩니다.
경찰관은 동료를 잃고 강도는 형제를 잃지만 슬픔의 감정은 과하지 않고 절제된 표현으로 보여집니다. 저는 형제들, 레인저들 둘 사이를 묘사하는 툭툭거리는 관계이야기가 좋았습니다. 그래서 영화 속 죽음에 대한 감정표현이 생소하면서도 죽음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각, 굳이 큰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표현이 인상깊었습니다.

마지막 해밀턴과 토비의 대화는 그래서 무언가 터질것 같은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해나 공감을 굳이 바라지는 않는 일종의 확인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동료를 잃은 것에 대한 슬픔, 황망함도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한 후회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감정들도 먼지가 덮이고 낡아서 삭아버린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이 영화의 이야기 진행방식이 찾설면서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은행강도를 하는 형제의 과거이야기,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는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툭 던져줍니다. 불친절하지만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해주는 듯이 놓아주는 영화라
더 진실되게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