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이브스 아웃 (Knives Out, 2019): 스마트폰 시대의 명품 추리물

아뇨, 뚱인데요 2021. 1. 29.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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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브스 아웃 (Knives Out, 2019)
감독: 라이언 존슨
주연: 다니엘 크레이그, 아나 드 아르마스

살인, 탐정, 추리

간단소개: 유명 추리소설 작가이자 출판사의 소유주인 할란 트롬비가 자신의 85세 생일에 사망한 채 발견된다. 경찰은 단순 자살로 처리하려 하지만 탐정 브누아 블랑(다니엘 크레이그)는 사건 이면의 진실을 파헤친다.

 

 누가 사건을 저질렀는지 밝히는 영화인 '후더닛 무비(whodunit)'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점점 시나리오 쓰기가 어려워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곳곳에 CCTV에 사람마다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범인의 입장에서 증거를 남기지 않고 범행을 저지르기가 너무 어려워진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에서 CCTV에 걸리지 않고 집에서 회사까지 가는 방법을 생각해봐도, 그리 쉽게 방법이 떠오르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회사에 무슨 짓을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나이브스 아웃은 이런 현대에도 작가와 감독이 충분히 추리물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었습니다. 추리에 멋진 미장센과 메시지까지 담아서 명작을 만들어 주었으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평생소장으로 구입하였습니다.

감사한 마음에 포스터 하나 더

글에는 영화의 내용에 대한 설명이 있고, 감상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스포주의)
범인이나 결정적 트릭과 관련된 정보는 쓰지 않는 감상문 수준입니다.

 

| 엄청난 정보와 거짓말

 추리물이 관객을 홀리려면, 사건과 관계된 인물(용의자)들에 대한 정보를 많이 풀어야 합니다. 범인 후보들에 대한 정보가 일단 충분해야 의심을 공평하게 할수 있으니까요. 사건이 벌어지고 이루어지는 첫 심문에서, 이런 정보들이 정신없이 몰아칩니다. 아주그냥 제대로 관객을 쥐고 흔듭니다.
 처음에 밝혀지는 정보들만 정리해 보았습니다. 여기까지는 영화를 보기 전에 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할란 트롬비
소설가이차 출판사 소유주인 재벌. 자신의 85세 생일 다음날 자신의 
저택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다.

 

 

 

린다 드라이즈데일
할란의 딸, 랜섬의 어머니. 상공한 사업가. 남편인 리처드와 할란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할란의 집에 왔다.

 

 

 

리처드 드라이즈데일
할란의 사위, 린다의 남편, 랜섬의 아버지. 할란에게 자신이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걸렸다.

 

 

 

 

조니 트롬비
할란의 딸, 메그의 어머니. 할란이 주는 메그의 교육비를 빼돌리다가 걸렸다.

 

 

 

 

월트 트롬비
할란의 아들, 제이콥의 아버지, 할란의 출판사에서 아버지 빽으로 붙어있다가 아버지에게 해고당했다.

 

 

 

랜섬 드라이즈데일
할란의 손자, 린다와 리처드의 아들, 백수. 할아버지의 유산 상속에서 자신이 제외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메그 트롬비
할란의 손녀, 조니의 딸, 할란의 간병인인 마르타와 친구이다.

 

 

 

 

제이콥 트롬비
할란의 손자, 월트의 아들. 친척들이 나치라 부르며 놀린다.

 

 

 

 

 

 이정도의 정보가 쏟아집니다. 거의 모든 등장인물에게 범행의 동기를 부여하고, 인물간의 관계도 설명합니다. 서로간에 적대하고 칼을 뽑아드는(knives out) 관계인 것이지요. 형사의 질문에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대답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서로 자신이 유리하게 진술하는 기억들

 거짓과 적의로 가득찬 관계를 만들어서 누가 범인이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배경을 뽑아냈습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로 탐정을 밀어넣습니다. 아주 쫄깃하고 입술에 침이 마르는 상황을 만듭니다. 이런 상황을 인물의 대사와 경찰심문으로만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화면으로도 보여주니 더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 아름답고 날카로운 화면구성

 앞서 말씀드렸듯, 추리물은 정보를 엄청나게 많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인물들의 대사만 가득한 영화가 될 수도 있습니다. 주어진 숙제만 하는 영화가 될 수도 있지만, 나이브스 아웃은 감독의 메시지가 분명한 영화이고, 이것을 화면구성(미장센) 으로도 드러냅니다.
 제가 생각하는 미장센이란, 화면을 보고 관객에게 감정을 느끼게 하는 기술입니다. 사건이나, 대사, 배우의 움직임을 빼고도 관객에게 전달하는 일종의 영상언어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미장센으로 일가견이 있는 분은 박찬욱 감독님이 있습니다.

장면 하나가 회화작품인 '아가씨'

 할란의 저택을 보면, 계단으로 올라가는 2층, 다락으로 올라가는 3층과 1층의 수많은 가면들이 보입니다. 할란에게 저택이 의미하는 바.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의 분위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또 경찰 심문장면에서 보이는 칼이야말로, 제목의 의미를 드러내면서 인물들의 성격, 관계를 한번에 보여주는 소품과 화면입니다. 심지어 단순 배경이 아니고 직접 활용도 됩니다.

한편의 현대미술같은 배경소품

 감독이 트위터로 공개한 콘티와 이걸 영화 속에 구현한 장면입니다. 감독이 아니라 소품담당이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요.

아니, 이 그림을 보고 저렇게 만들었다고?

 

 

| 권선징악을 이야기하는 세련된 방법

 나이브스 아웃이 명작인 이유는 기존의 법칙을 따르면서도 여기에 변주를 가해서 새로운 인물을 하나 추가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 인물이 인간 거짓말 판독기, 마르타입니다. 그녀는 할란의 간병인이자 친구였습니다. 할란이 죽고나서 가장 슬퍼한 사람이기도 하구요. 그녀에게는 신기한 특징이 있는데, 거짓말을 하면 구토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거짓말이 판치고 진실이 숨겨진 추리물에서 진실만을 이야기하는 인물이라니, 이 무슨 안티 치트키란 말인가요. 극 중에서도 마르타는 진실만을 말해야 하므로, 탐정에게 이용되고 다른 등장인물에게도 이용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피아게임 최약체, 마르타

 마르타는 범인으로 의심도 받고 이용도 당하지만, 결국 이를 다 이겨냅니다. 
 마르타의 입장에서 보면 할란의 죽음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은 미국 땅에 들어온 순수한 마음(Kind heart)를 가진 이민자가 거짓과 악의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인까지 저지른 악당을 이기고 몰아내는 내용의 권선징악적인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교훈적이고 단순한 주제를 이렇게 세련되게 비틀어 전달한 감독의 역량이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 생각하면서 보면 재미있는 것들

 나이브스 아웃을 여러번 보면서, 몇 개의 중요한 사건들에 집중하면서 보면 이해가 빠르고 더 재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 할란의 죽음의 진실은 무엇인가.
둘, 누가 왜 탐정인 브누아 블랑을 고용했는가.
셋, 두번째 살인을 대하는 마르타와 범인의 자세는 어떤가.

이리 저리 씹고 뜯고 즐기고 맛볼 영화가 많아지면 좋습니다. 나이브스 아웃은 다니엘 크레이그가 브누아 블랑을 계속 연기하며 속편을 제작한다고 합니다. 마르타는 속편에 나오기 힘들 것 같지만, 분명 그만큼 더 멋진 추리물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의외로 정상적인(;) 모습만 보였던 브누아 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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