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빌로우 제로 (Bajocero, 2020): 고정관념을 깨려고 노력한 스페인 스릴러

아뇨, 뚱인데요 2021. 2. 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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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로우 제로 (Bajocero, Below Zero, 2020)
감독: 루이스 퀼레즈
주연: 하비에르 구티에레즈

 

사람 궁금하게 만드는 포스터

간단소개: 혹한의 어느 겨울밤, 죄수들을 호송하는 차량이 습격을 당한다. 호위를 맡은 경찰들마저 모두 쓰러지고, 홀로 남은 경찰 마르틴은 공격을 피해 죄수들과 함께 호송용 장갑차 안에서 문을 걸어잠근다.

글에는 영화의 내용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있고, 감상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스포주의)
 
 넷플릭스의 큰 장점은, 이제껏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종류의 영화와 드라마를 아주 편하게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빌로우 제로같은 스페인 영화도 지금까지라면 정보조차 얻기 힘들었을텐데, 인기있는 영화 순위에 올라 있는 것을 보고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되었습니다.

 

| 헐리우드 영화의 규칙을 어기려는 스릴러

 주인공 마르틴(하비에르 구티에레즈)는 한겨울 눈보라가 몰아치는 밤에 죄수를 호송하던 중, 괴한의 습격을 받게 됩니다. 같이 있던 동료들이 모두 당한 상태에서 마르틴은 살아남기 위해 죄수들과 함께 갇히는 선택을 합니다. 이부분까지 보면서 설정은 쪼이는데 영화의 흐름은 굉장히 천천히 흘러가는 것을 보고서는 약간 놀랐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동료들이 당했는지도 모르는 상황

 

 지금까지 헐리우드 영화의 규칙대로라면 영화의 인물과 배경에 대한 설명이 빠른 템포로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얼마나 악독한 악당들인지 보여주고, 주인공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주인공의 과거사라던가 동료들과의 갈등이나 관계도
설명해 준다던가 하는 식입니다. 결은 다르지만 비슷한 소재인 콘에어(1997)같은 영화의 초반 설명장면에서 이런 영화의
규칙을 볼 수 있습니다.

 

인물들 배경과 성격 설명이 튼튼해야 행동이 납득이 되기 마련이지요

 

 빌로우 제로는 설명을 최소한 아끼고 초반을 진행합니다. 그리고 긴장감을 쪼이는 호송차 습격장면도 직접적인 공격에 대한 묘사를 피하고 천천히 조여오는 느낌으로 마르틴과 죄수들에게 위기를 조성합니다.

 

 죄수 호송차를 호위하는 두번째 차량을 공격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고, 동료들도 마치 위험한 안개에 싸여 실종되는 것처럼 보여줍니다. 십중팔구 제작비의 문제가 크게 작용한 것이겠지만, 어설픈 CG라던가 싼티다는 총격전을 사용하는 것과는 다르게 음산한 분위기와 안개 속 홀로 남은 호송차량을 보여줌으로써 색다른 긴장감을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공포영화의 분위기마저 깔리는 안개 속 차 한대

 

| 축소되는 이야기와 어긋나는 연출들

 마르틴은 사면초가의 상황을 맞이합니다. 밖에는 동료를 살해하고 자신마저 죽이려는 괴한이 있고, 안에는 흉악범 죄수들이 있습니다. 마르틴은 지금 당장 나가면 죽는게 확실하니까, 안쪽에 같이 있는 죄수들과 협력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죄수들은 언제 자기를 죽이고 탈옥을 하려할 지 모릅니다. 괴한은 차를 점령한 상태에서 호송차량 안의 죄수와 마르틴에게 죄수 중 한명을 내놓으라 협박합니다.

 

 이야기가 마구 꼬이기 시작하고 언제 배신할지 모르는 적과 힘을 합쳐야 하는 상황입니다. 설상가상으로 호송차를 열 수 있는 열쇠마저 손에서 잃어버리게 되고 마르틴과 죄수들은 괴한이 자신들을 노리는 목적을 알아내려 합니다.

 

방심하는 순간 누구한테 당할 지 모름

 

 등장인물 사이의 감정선과 협력과 배신이 얽히고 정신없이 돌아가야 하는데, 영화는 이야기를 상당히 축소시킵니다. 등장인물 중 같혀있던 죄수들이 하나씩 괴한의 의도로, 또는 사고로 죽게 됩니다. 그러는 와중에 호송차 안의 인물들이 살아남기 위해 무엇인가 파헤친다던가 새로운 진실을 밝힌다던가 해야되는데, 영화는 그마저도 적극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누가, 왜 자신들을 노리고 있으며 어떻게 대항을 해야 할까 호송차에 대응을 할 수 있는 장치라거나 자신들이 이런 처지에 놓을 동기를 파악해야 하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일 것입니다. 하지만 죄수들과 마르틴은 그냥 가만히 있습니다. 탈출해볼까 시도도 한번 하지만, 그냥 하다가 맙니다.

 열쇠도 없는 호송차에서 기다리는 것 말고 무슨 새로운 움직임이 있을 수 있겠냐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같은 스페인 영화중에는 관 속에 같힌 주인공이 한시간 반동안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영화도 있는걸요.

관 하나만 놓고 제대로 쪼이는 영화를 만듬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를 펼치기 위해서는 그만큼 시작부터 판을 잘 깔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 누가, 왜 이런 짓을 벌였을까

 이제부터는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영화의 제일 안좋았던 점은 마지막 마무리에 있다고 봅니다.
결국, 누가 왜 이런 일을 벌였는가 밝혀지게 되고, 모든 이야기가 한데 모여서 끝을 내야 합니다. 그런데 빌로우 제로는 끈적하고 음산한 분위기의 흑막이 있을 것처럼 묘사했던 초반과는 다르게 결국 사적인 복수가 이야기의 중심에 섭니다.

 소중한 누군가의 복수를 위해서 죄수 호송차를 혈혈단신으로 습격했다는 이야기인데요, 총기를 갖고 있는 경찰이 네명에 차량이 두대인데, 아무리 경찰 출신이라고는 하지만 총 한자루든 남자 1명이서 이 모두를 제압했다는 말이잖아요? 지금? 이걸 실감나게 보라고?

 

경찰 네 명을 혼자 제압함

 

 사적인 복수가 옳은 것인가 하는 영화의 메시지는 찬반이 있을 것 같습니다. 메시지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영화가 진지한 자세로 관객을 설득하려 했느냐 하면,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대사로는 말합니다. '부수적인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노력했다'고요. 하지만 경찰만 세명이 죽었습니다. 심지어 반격불능으로 만들고 죽이지 않거나 구급차를 불러준다거나 하는 행동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죄수 중 한명은 불태워 죽였지요. 자신의 복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인데.

 초반에는 세상 사이코 직소처럼 달려들던 괴한이 영화 절반 딱 지나니까 가족의 복수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행동해야만 했던 피해자라고 합니다. 이러면 동정을 하거나 공감을 해주고 싶어도 앞에서 저지른 일때문에 도저히 그럴 수가 없게 됩니다.

 메시지에 동의 여부를 떠나서 초반에 벌려놓은 이야기를 수습할 수 없으니 가족이 피해를 입었다는 복수이야기를 이용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저씨 어제 몇명이나 죽였는지 아세요?

 

 지금까지 많은 영화에서 나왔던 이야기의 구조나 흐름을 따라가지 않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 있다고 봅니다. 보는 이들이 새롭다, 신기하다 그리고 재미있다고 느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클리셰를 비롯하여 고정된 이야기라는 것은 그만큼 검증되고 많은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잇는 이야기라는 의미도 있겠습니다.
 새로운 분위기와 아이디어로 이야기를 만들려면, 그만큼 책임감 있게 마무리도 잘 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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