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마에게 바치는 청소지침서 (책, 2021): 제목만큼 설정에 정성을 기울였더라면

아뇨, 뚱인데요 2021. 4. 7. 06:04
반응형

살인마에게 바치는 청소지침서 (소설, 2021)
저자: 쿤룬(崑崙)

 

제목에 빠져서 찾아봤습니다.

간단소개: 대만 타이베이 시내를 배회하는 젊은 청년 스넨(十年)은 연쇄살인마이다. 그는 살인집단 'JACK'의 조직원들만을 골라내어 전문적으로 사냥한다. 그런 스넨이 어느날 'JACK'에게 살해당할뻔한 샤요쥔을 구해주게 된다.

 제목과 표지를 보고 상당히 매력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와 같은 스타일로 정보를 담고 있을것만 같은 설명문적인 제목과 살인마라는 무서운 단어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흥미를 끌어당깁니다. 블랙코미디같은 요소를 품고 있지 않을까 기대를 갖고 책을 읽었습니다.

문화 사회전반을 아우르는 블랙코미디

| 잔혹한 살인에 비해 빈약한 청소


 주인공 스넨은 연쇄살인을 일삼는 살인마입니다. 그는 자신의 현재상황에 대한 기억이 없습니다. 다만, 자신이 증오를 품고 있는 살인집단 'JACK'를 찾아내서 죽이는 것만이 삶의 목적입니다. 'JACK'은 이름에서 드러나다시피, 세계적으로 유명한 살인마 잭 더 리퍼를 숭배하는 집단입니다.

 어느날 JACK의 일원 중 하나에게 납치당해서 죽을 위기에 처한 샤요쥔을 스넨이 구해줍니다. 샤요쥔은 스넨을 경계하지만 곧 다른 살인마들과는 다른 점을 발견하고 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처음 설명은 매우 매력적입니다. 스넨이 자신의 타겟인 JACK의 일원을 살해하는 과정과 JACK의 조직원들이 살인 충동을 느끼고 피해자들을 대하는 과정은 정말 자세하고 직접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JACK의 조직원들은 자신들의 살해 대상을 벌레 보듯이 하고 생명을 대하는 자세 자체가 글러먹은 쓰레기들로 그려집니다. 인육에 대한 묘사도 있습니다. 기분이 안좋죠. 게다가 살인은 저지르는 과정은 굉장히 노골적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거부감과 증오심을 너머서 혐오감까지 느껴집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읽는 사람에게 JACK이라는 집단에 대해 안좋은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성공했지만, 그런 혐오감 이외의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 큰 걸림돌입니다. 마치 박훈정 감독의 VIP영화의 평과 일맥상통하는 느낌입니다. '이놈들 아주 나쁜놈들임'말고는 어떤 설명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읽다보면 책의 내용이 무섭다거나 긴장되지는 않고, 덮고 싶어집니다.

불쾌함의 종합선물세트

 그런 나쁜놈들을 사냥하는 스넨의 이야기를 보면서 즐겁거나 통쾌하게 표현했다면 영웅의 이야기일테고, 쓴웃음이 든다면 블랙코미디일텐데 소설은 둘 중 어느 감정도 아닌 방향으로 나갑니다. 악당 JACK에 비해서 주인공 스넨의 행동에 대한 묘사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스넨은 자신이 죽이는 타겟을 향해 살인 후 이루어지는 깔끔한 청소의 과정을 말해주는 습관이 있습니다. 스넨은 결벽증입니다. '벨벳 커버 위로 떨어진 부스러기들은 단단한 솔로 닦아내야 하며 걸레는 사용하면 안된다' 같이 의외로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내용입니다.

 

 이것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다거나 증오를 표현하는 수단이라거나 하다못해 꾸준하게 등장해서 캐릭터를 나타내준다거나 한다면 소설의 개성을 나타내줄텐데요. 안타깝게도 제목에 나온 것만큼의 개성적인 비중을 가지고 소설 속에 반영되지는 않습니다. 처음에 한두번 하고 말아요. 주인공 스넨에 대한 설정이 부족한채로 이야기는 앞으로 달려나갑니다.

 

| 길잃은 주인공 잔혹한 설정의 향연


 이야기는 중반 이후로 급격하게 길을 잃습니다. 스넨이 어렷을 적 학대를 당했던 보육원의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입니다. 살인집단 JACK의 스토리가 제대로 펼쳐지지 않은 가운데 스넨의 보육원 이야기가 겹쳐지고, 그와중에 자신이 잃어버린 기억의 진실까지 찾아갑니다.

 이쯤되면 스넨의 결벽증 설정은 아스라히 사라지고 스넨의 살인은 개인적인 복수인지, 정의의 심판인지 그닥 중요하지 
않고 약간 백정같은 모습만 남습니다.

 '살인마에게 바치는 청소지침서'의 가장 좋지 않았던 점은 초반에 매력적인 주인공에 대한 설정이 살인마 JACK의 행동에 비해서 심각하게 모자랐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불쾌한 묘사는 넘쳐나는데 이를 처단하는 주인공에 대한 내용은
약합니다. 살인을 저지르는 주인공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서라도 앞의 묘사가 받쳐주어야 할것 같았습니다. 끝가지 읽기에 많이 힘들었던 소설이었습니다.

찾아볼 수 없었던 블랙유머 ㅠ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