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2007): 극복할 수 없는 운명이 우리에게 찾아올 때

아뇨, 뚱인데요 2021. 2. 15.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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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ntry for Old Men, 2007)
감독: 에단 코엔, 조엘 코엔
주연: 토미 리 존스, 하비에르 바르뎀, 조슈 브롤린

 

아카데미 4관왕, 남우조연상 하비에르 바르뎀

간단소개: 르웰린(조슈 브롤린)은 사막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던 현장을 지나다 돈가방을 발견하고 그것을 차지하려 한다. 돈의 주인이었던 조직에서는 킬러를 보내 돈을 찾으려 하고 보안관 에드(토미 리 존스)도 사건 현장의 단서를 쫓기 시작한다.

관련정보: 

제80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남우조연상(하비에르 바르뎀) 4개 수상
로튼토마토 평점 93%, 관객평점 86%

개봉한 지 14년이 됐는데 이정도 점수를 유지합니다. 명불허전

글에는 영화의 내용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스포주의)

 

 영화를 보면 감독의 손 안에서 놀아나고 들었다 놨다 멱살잡혀서 휘둘린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대부분의 착품,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봤을 때도 그랬습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이야기, 화면, 인물에 압도되어
영화관을 나와서도 한참을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는 작품들입니다.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이하 노위나없)도 제게는 그런 영화입니다.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도, 대체 내가 뭘 본거지, 라면서 한참을 정리하고 되새기고 생각해야 했던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에 대해 전체적이고 전문적인 해석이 들어가려면 훨씬 풍부한 지식과 해석을 담은 감상들이 있을 것이고, 저도 그런 해석을 보고 제가 생각했던 의미를 조금씩 정리했습니다.

 

 팬의 입장에서 장님 코끼리 만지듯 제가 좋아한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우선, 제목은 예이츠의 시 '비잔티움으로의 항해' 첫줄에서 그 뜻을 찾을 수 있습니다.
"That is no country for old men." 해석하면 '저것은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로 볼 수 있겠습니다. 앞에 (There is)가 생략되었다고 보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라고 처음에 제목을 붙인 것 같습니다.

 

| 스릴러의 요소를 꼼꼼히 바탕에 칠하기

 르웰린(조슈 브롤린)은 의도치 않게 마약조직의 돈가방을 손에 넣게 됩니다. 딴에는 인간적인 동기에 숨이 붙어있던 사람을 돕기 위해 현장에 다시 찾아갔다가 조직으로부터 쫓기게 됩니다. 르웰린은 모범적이지는 않지만 납득할 수 있는 정상적인 동기에 의해서 움직이고 자신을 지키려는 능력도 충분히 뛰어납니다.

 

건조함이 화면을 뚫고 나오네요

 처음 갱단에게 쫓기게 될 때, 르웰린은 헤엄쳐서 강을 건너고, 사냥개가 그의 뒤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르웰린이 강을 먼저 건넌 상황에서 30초 정도 시간이 있고 그에게는 물에 빠진 권총 한자루가 있습니다.

 르웰린은 서두르지 않고 물에 빠진 권총을 사용하기 위해 침착하게 총을 분해합니다. 이미 젖어버린 총알은 버리고 격발에 중요한 부위를 흔들고 불어서 말립니다. 그리고 나서야 총을 조립하고 쫓아오던 개를 쏴서 처리합니다.

말없이 인물을 설명하는 장면들, 존경합니다

 이 인물은 총기에 대한 지식이 있고 그것을 활용한 경험도 충분합니다. 사냥개에게 쫓기는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대처할 수 있는 대범한 성격입니다. 마지막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눈에 밟혀 집에서 물을 갖고 사막의 총격전 현장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 정도의 인정은 있는 사람입니다.

 이정도의 성격과 능력이 있었기에 조직이 보낸 사이코패스 킬러에 대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성과 능력을 충분히 갖춘 르웰린을 혼돈과 죽음의 상징과도 같은 킬러,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가 쫓습니다.

 

과잉도 없고 분출도 없지만 감정전달이 충분히 됩니다

 

 

| 혼돈과 질서를 포함하는 모순과도 같은 존재

 하비에르 바르뎀이 연기하는 안톤 쉬거(Chigurh)는 이후 나온 영화에서 숱하게 따라한 사이코패스 킬러의 원전과도 같은 캐릭터입니다. 르웰린을 추격하고, 거슬리는 것들은 다 죽이면서 갑니다. 돈 갖고간 놈 잡아오랬더니 학살을 하고 다니는 미친놈이죠. 움직이는 죽음과 혼돈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자기만의 규칙을 적용하는 고집도 있습니다. 죽이고 싶어도, 동전던지기를 해서 맞추면 죽이지 않는, 움직이는 죽음이지만 그 안에서 자기만의 규칙과 질서를 주장하는, 모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만의 규칙인 동전던지기를 강요할 때 언뜻언뜻 비치는 웃음은 그런 상황 자체를 즐기는 무서움까지 느끼게 합니다.

 

동전던지기에서 가장 크게 잃어 본 게 뭔가?

 그 앞에서 기존의 질서, 지나간 시대의 규정들은 무의미합니다. 안톤 쉬거를 쫓는 노인 보안관 에드의 낡은 지식과 경험만으로는 상대하거나 저항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죠. 일반적인 스릴러 영화였다면, 해결사 역할을 해주거나 적어도 악당의 반대편에서 호각을 이뤄 활약해주어야할 보안관은, 여기서는 죽음이라는 운명에 저항할 수 없고 지나쳐갈 뿐입니다.

 

| 우리 삶에서 안톤 쉬거를 마주했을 때

 충분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르웰린은 비극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치며 달립니다. 당장은 피할 수 있을지라도 오늘 뿐일 것입니다. 내일은 어떤 안톤 쉬거가 우리 집 문앞에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무작위 동전던지기처럼 마주한다해도 살아남을 수 있겠죠. 하지만 우리 삶에 동전던지기는 한 번이 아닌걸요. 99번 앞면이 나와서 살아남았더라도 내일은 뒷면이 나올지 모릅니다.

 이런 불행은 누구에게나 해당하기 때문에 차라리 평등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거부할 수도 없고 감당할 수도 없는데다가 도망칠 수도 없는, 그런 비극이 우리에게 찾아왔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뿐일 듯합니다.

 

어느 문 뒤에서 안톤 쉬거를 만나게 될 지 모르니까요

 긴장감 넘치고 탄탄한 스릴러로 시작한 이 영화는 누구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혼돈과 불행을 더하여 우리네 삶에도 적용될법한 공감대를 만들었습니다. 허구의 이야기에 공감이 더해지고, 나아가 깨달음까지 건네줄 때 비로소 명작이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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