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링고 (Gringo , 2018)
감독: 내쉬 에저튼
주연: 데이빗 오예로워, 아만다 사이프리드, 샤를리즈 테론
간단소개: 제약회사의 팀장으로 일하는 해롤드는 회사가 망할 것이고, 대표들은 회사를 팔아치울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합니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해롤드는 회사 대표 리처드와 일레인을 모시고 공장이 있는 멕시코로 향합니다. 한편 동네 약장수인 마일스는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친구 서니와 약을 밀수하기 위해 멕시코로 갑니다.
넷플릭스에 요상한 영화가 추천에 떴습니다. 사전지식없이 독립영화 보는 기분으로다가 봤는데요, 이 영화 헐리우드에서 잘나가는 여배우들이 상당히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배우들 보는 재미마저 빼버린 희한한 작품입니다. 꼭 이런 작품이 걸리면 해외 반응은 어떨지가 궁금하더라구요. '나만 이상하게 느끼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요.
얼추 제 느낌과 비슷하기는 한데 전체적으로 후한 것 같습니다.
워낙 시장도 크고 이상한 영화들이 많아서 그런가, 일단 멀쩡한 영화취급은 해줬다는 인상입니다.
글에는 영화의 중요정보가 많이 담겨 있습니다. (스포주의)
| 의도를 파악할 수 없는 영화의 톤
해롤드는 제약회사의 팀장급 직원이고, 대표 두명에 대해 의심스러운 정황을 포착합니다. 이 대표라는 작자 둘(한 명은 샤를리즈 테론)이 영 못미덥고 무책임한데다가 자기를 포함한 직원들을 내팽개치고 회사를 팔아치울 것 같은 상황입니다. 제약회사 대표은 리처드와 일레인은 자기 주머니를 채우려는 욕심과 동물적 욕망만 가득합니다.
의심을 파헤치는 영화가 될 수도 있고, 팽팽 돌아가는 머리를 이용해서 고군분투하는 영화, 법정영화도 될 수 있습니다. 이도저도 아니면 인물들이 제정신을 못차리는 분위기를 만들고 우연에 기대는 블랙코미디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뭘 하나도 안합니다. 영화의 분위기가 없다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외국 평들은 영화가 'Dark comedy'라는데, 풍자나 하나의 위트라도 제대로 된 것을 발견했더라면 영화를 보고 나서 이렇게 멍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해롤드는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멕시코 호텔에서 납치 자작극을 벌입니다. 회사를 살리려는게 아니라 회사에서 주는 몸값을 자기 퇴직금으로 받아 챙기려고요. 시작부터가 맞아 돌아가지 않는 영화는 오래간만입니다. 자기한테 몸값을 줄 사람들에 대해 해롤드는 잘 알고 있어야만 하죠. 그런데 그들이 순순히 돈을 내줄 것이라는 믿음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해롤드는 대책없이 셀프 인질극을 벌이다가 아니나 다를까 몸값이 없다는 폭탄같은 말을 듣습니다. (있다 해도 줬을리가 없죠.)
그 와중에 헤롤드는 자기 아내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듣게 되고, 빡침과 절망에 빠집니다. '그링고'는 해롤드의 이야기를 통해서 웃기거나, 울리거나, 놀래키거나 어떤 의도도 전하지 않습니다. 하다못해서 화장실 유머를 보여줘서 보는 사람이 불편하지만 낄낄댈 수 있게라도 해야겠다. 이런 의도를 찾아볼 수가 없다는 거죠.
해롤드는 열심히 돈을 타내려 하고, 해롤드의 회사와 공장을 둘러싼 인물들이 자기 욕심을 채우려 달려드는데, 의미를 담은 장면은 보이지 않습니다. 해롤드의 다급함 말고는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찾기가 힘듭니다. 의미가 깊어지는 사건이나 행동을 위해서 스토리가 좀 진행된다 싶으면 어디서 새로운 인물이 난입해서 이야기를 마구 뒤섞어 놓는 것입니다. 기-승-승-승...이런 식의 구조로 진행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해외 비평중에 가장 공감되는 것 하나를 퍼왔습니다. "그링고는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했다. 자동차 사고가 조금 괜찮기는 한데 연기, 상황, 대화 와 스토리 모두 인상적인 뭔가 될듯 화면에 떠다니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 갈라지고 꼬이는 사건과 인물들
냉소와 풍자가 있는 소동극으로 틀었더라면 황당한 느낌이 덜했을텐데, 영화는 멕시코에 대한 편견만 심해질 장면만 들어놓으며 이야기를 마구 불려나갑니다. 기존의 인물들에 대한 소개, 배경, 사건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면서, 새로운 사건과 인물이 스토리에 마구 추가됩니다.
제약회사 대표인 리처드와 일레인은 회사를 팔아치우기 위해서 멕시코 공장에 흘러 들어오는 검은 돈을 끊으려 합니다. 그 와중에 둘의 아귀다툼이 세지구요.
멕시코 공장 쪽에서는 미국 제약회사에서 검은 루트로 공급되던 약이 중단되니, 갱단들이 나서서 제약회사쪽 사람들을 사냥하러 나섭니다. 그 목표가 바로 해롤드였습니다.
미국에서 멕시코로 여행온 척하면서 약공장에서 약을 빼돌리려는 마일스와, 순수한 마음에 여행으로 따라왔지만 남자친구가 의심스러운 서니는 호텔방에서 해롤드를 만나고 우연찮게 그를 돕게 됩니다.
이뿐아니라 자기 사업의 마무리에 해롤드 사건이 방해될 것 같았던 약국사장 리처드는 자기 형 미치를 시켜서 해롤드를 처리하려고 합니다. 생명보험으로 돈도 타내고 찜찜한 일도 처리하려고요.
이 많은 사람들이 자기 목적을 이루려고 섞입니다. 잘나가던 시절의 가이 리치를 데려와도 이걸 모두 다 제대로 보여주기는 힘든 일일 것 같습니다. 멕시코 갱단이 미국 약공장을 습격하는 가운데, 모든 인물들이 한데 모이게 되고 영화는 거침없이 필요없는 인물들을 아웃시킵니다. 대충 자기 역할 했다 싶으면 그냥 죽이거나 빼버립니다.
모든 사건이 끝나고 주인공 해롤드는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지만 그냥 어쩌다가 돈벼락을 맞은 것입니다. 정말 우연으로요. 주인공이던,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던 모두 우르르 등장했다가 끝날 때쯤 우르르 정리를 해줍니다. 누군가는 감옥에 가고, 누군가는 잘 살게 되지만 그냥 방구석에 뭉쳐 있는 폐지들 모아서 버리는 것처럼 의미나 의도없이 마지막에 쓱 보여주고 끝냅니다.
영화를 보면서 적어도 욕망에 정신을 놓은 인물들이 개떼처럼 달려드는 모습은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나마 의미있던 인물들이 주인공 해롤드와 그를 도왔던 순수의 상징 서니였는데요, 극한의 우연으로 한번 도움을 주고 받고는, 의미있는 인연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일단 해롤드에 얽힌 인물들이 너무 많아요. 원래 재료의 맛이 느껴지지 음식을 배가 터질 정도로 먹은 기분이었습니다. 배우들이 너무나 아까웠습니다.
<덧>
IMDB를 찾아보니, 미국 수익은 약 500만 달러입니다. 심지어 제작비는 공개도 안되어 있습니다. 배우들 개런티만 대충 따져도 재난 수준으로 망했겠네요. 그 잘나간다는 헐리우드에서 이런 영화도 만들어지기도 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