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바 (Ava , 2020)
감독: 테이트 테일러
주연: 제시카 차스테인, 콜린 파렐, 존 말코비치
서비스 플랫폼: SEEZN (유료)
간단소개: 킬러 에이바(제시카 차스테인)은 자신의 목표물을 제거하기 전에 타겟에게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대화를 하곤 한다. 그녀를 관리하는 상사들은 이런 점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에이바는 킬러라는 일 외에도 가족과의 관계, 알콜 중독 등 자신과 마주해야 할 문제가 많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가 망작이라고 하지만 왠지 나만은 이 영화에서 좋은 점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근거없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바로 전날 미녀삼총사 3도 나름 흥미를 갖고 재미를 느껴가며 봤기 때문에 자만심이 있었나봅니다. 제시카 차스테인을 데려다가 이런 망작을 만들다니, 어떻게 보면 대단한 것 같습니다.
글에는 영화의 중요 내용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스포주의)
| 냉혹함 뒤에 감추어진 복잡한 마음의 킬러
킬러 에이바(제시카 차스테인)은 자신의 목표를 죽이기 전에 스스로의 잘못을 고백하라는 말을 건네고 타겟과 대화를 하는 사람입니다. 일종의 고해성사같은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설정은 아무 역할도 하지 않습니다. 초반에 반짝 나오고 결정적 역할을 하지도 않고 후반에 반복된다거나 주인공의 심리나 성장같은 것도 상관없습니다. 에이바가 이런 질문을 던지고 대화를 하는 의미가 없어요.
에이바는 자신의 직업을 충실히 수행하지만 킬러가 제거대상과 소통을 한다는 것 자체를 금기하는 상부와 마찰을 일으킵니다. 그녀가 임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표정은 마치 회사원들이 일에 쩔어 사는 표정을 보는 것 같습니다. 지겹고 피곤하고 내가 제대로 사는 게 맞나 속으로 찜찜해 하는 표정입니다.
에이바의 담당 상관인 듀크 역의 존 말코비치도 이런 분위기의 연기라면 일가견이 있습니다. 전화를 건너 들려오는 목소리만 들어도 일은 사람 죽이는 일인데 노곤하고 식상한 일처리의 반복에 어울리는 무미건조한 목소리입니다.
에이바는 영화 안에서 특별히 그녀의 세계에 대한 설명이 따로 없습니다. 마치 우리가 다 알고 있는 평범한 동네 회사원 보듯합니다. 그녀는 어머니, 동생과 사이가 엄청 좋지 않습니다. 아버지때문에 가족을 버리고 나왔다는 오해를 사고 있습니다. 동생의 약혼자가 될 남친을 만났는데, 하필이면 전에 자기가 만났던 남자네요. 이놈의 인연은 어떻게 이렇게나 꼬이는지.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에이바는 술병을 만지작거립니다. 심하게 알콜중독이었다가 술을 끊은 에이바에게 술에 대한 충동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시험합니다.
이렇게만 보면 킬러라는 그녀의 직업은 배경으로 깔리고 에이바 또한 초라할 수 있는 인간이란 것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그녀와 얽힌 드라마를 심도 있게 보여주고 공감할 수 있는 사건과 대사, 그에 어울리는 연기를 보여줬더라면 드라마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겠습니다만, 영화는 절대 킬러와 액션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 팔자 기구한 킬러의 인생극장
에이바의 조직에서는 그녀를 종료시키기로 합니다. 에이바를 끝내기로 상부의 사이먼(콜린 파렐)이 결정하고 직속 상관이었던 듀크는 그것을 막으려고 합니다. 에이바의 삶, 가족, 사랑, 그녀의 중독과 관련된 이야기들 사이사이에 킬러 관련한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게 도저히 섞이지가 않습니다.
영화의 주된 감정은 에이바의 삶입니다. 그녀는 기대고 싶은 사람때문에 힘들고 가족과도 관계도 힘듭니다. 술에 대한 유혹은 세져만 가고 무너질 것 같습니다. 이런 감정들마저 제대로 공감을 이루면서 보여주지 못하는 와중에 조직에서 에이바를 죽이려 했네 아니네 얘를 살리네 마네 하는 장면들이 갑자기 끼어드는 것입니다.
제대로 붙을 리 없습니다. 킬러가 삶에 힘들어하는 이야기는 물론 할 수 있죠. 그럴려면 조직과 관련된 이야기를 확실히 배경으로 돌려서 서브플롯으로 만들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후반에까지 가서도 끝까지 킬러 이야기는 앞으로 튀어나옵니다.
주인공에게 위기를 만들고 액션을 보여주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보입니다. 사이먼과 듀크, 사이먼과 에이바의 격투, 액션을 보고 있으면 정말 억지로 액션을 끼어넣으려 애쓴 것 같은 제작진의 노력이 보입니다. 최소한의 맥락도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로 일단 싸우고 보자는 모습이에요.
자신을 처리하려는 조직, 자기를 밀어내는 가족들, 모두가 마무리가 되기는 하지만 어떤 감정이나 느낌을 주지는 못합니다. 최소한 가족간의 갈등만큼은 공감이 갔어야 했는데, 가족이 전부 비호감이어서 그것마저도 힘들었습니다. 에이바의 팔자가 참 기구하고 박하구나. 이런 주제를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 같네요.
정말 다행인 것은 제시카 차스테인은 그와중에 표정이 하나하나 전부 살아있습니다. 지나가는 감정도 하나씩 잡아서 얼굴에 다 드러내는 훌륭한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가끔 '아 다시 만든다면 이런 장면은 쓰지 않았을텐데' 같은 생각이 들곤 합니다. 직접 만들 능력도 안되고, 실제 영화 제작은 당연히 더 힘든 상황이었겠지만, 아쉬운 마음에 고치고 싶은 부분이 보이는거죠.
그런데 에이바는 뭔가 이상하고 엉망인데 고치라고 하면 도저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킬러 주인공이 쫓기는 영화와 제시카 차스테인의 가족 드라마로 나눠서 만들었어야 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