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1999): 형사와 범인의 추격과 대결을 담은 수채화같은 영화

아뇨, 뚱인데요 2021. 7. 15. 06:12
반응형

인정사정 볼 것 없다 (Nowhere to Hide, 1999)
감독: 이명세
주연: 박중훈, 안성기
서비스: SEEZN

 

이 포스터에 혹해서 봤었더랬죠

간단소개: 마약을 둘러싼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독종 경찰 우형사(박중훈)은 끈질긴 수사 끝에 단서를 찾아낸다. 우형사와 동료들은 살인사건과 관련된 공범들을 한명씩 추적해서 체포하고, 주범 장성민(안성기)를 수배하게 된다.

 방구석에서 비디오만 빌려보다가 극장이라는 곳에 친구들과 막 다닐 때였습니다. 파란색 포스터에 꽂혀서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극장에서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개봉 당시에도 과거의 감성을 자극하는 화면이 가득한 느낌이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 보니 장면은 여전히 완벽히 이해할 수 없어도 감성은 조금 더 공감이 갔습니다.

 

미국 개봉도 했기 때문에 로튼 토마토도 점수도 있습니다;

 

외국 사람이 공감하기는 어려운 화면인 것 같습니다.

| 한국식 수채화 같은 미장센


 경찰이면서 깡패보다 더 폭력적이고 독한 서부서 강력반 우형사(박중훈)의 구역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우형사와 파트너 김형사(장동건), 동료들은 끈끈한 팀웍을 바탕으로 독하게 달려들어 공범들을 하나씩 잡는데 성공합니다.

 

김형사(장동건)과 우형사(박중훈)

 영화를 만드신 이명세 감독님은 화면을 아름답게 빚어내는 미장센으로 높은 평가를 받으셨습니다. '첫사랑' 같은 영화에서는 김혜수 누나를 보면서, 장면으로 느낌을 전달하는 스타일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는데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는 범죄를 소재로 한 형사물에 감독님의 스타일을 더했습니다.

미장센 [mise en scène]: 무대에 오른 등장인물의 배치나 동작, 무대 장치, 조명 따위에 관한 총체적인 설계. 라고 하는데요, 미장센은 관객에게 감정을 느끼게 함으로써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잘 찾아보는 눈도 있어야겠지요. 제가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영화를 여러번 봤지만 평론가들이 극찬하는 그런 느낌은 도저히 못받겠더라구요 ㅠ

 

은행잎이 깔린 계단

'40계단 살인사건'으로 대표되는 영화의 미장센, 화면은 아름답다는 느낌도 있지만 제가 보면서 가장 크게 다가온 감정은 '쓸쓸한 감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노란 은행잎이 바닥에 깔린 길이 계단으로 이어지고, 그 한가운데에서 우산을 찢고 목표는 장성민의 칼에 맞습니다. 살인이나 피에 대한 묘사는 직접적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칼을 맞은 사람이 뻗는 손과 그의 표정은 적에게 당했다는 당황스러움, 고통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잡고 싶어서 뻗는 손 같습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그런 감정을 갖고 연기를 하라고 디렉팅을 줬다고 하네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짠하네요

 살인사건을 쫓는 형사들을 따라가는 이야기에서도 이런 분위기는 계속됩니다. 그리고 추억을 머릿속에서 그리는듯한 처연한 화면은 우리나라의 특정세대라면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듭니다.

 비오는 하늘, 오래된 시장통 한가운데 포장마차, 슬레이트로 얹은 지붕에 빗줄기가 타고 흐릅니다. 포장마차 안 난로 위에는 주전자가 끓고 있고 추운날씨와 주전자에서 나오는 김이 가게 안을 채웁니다. 천장에는 오래된 형광등이 매달려 있고, 주인장은 안주를 썰다가 새로온 손님에게 국물을 떠주기 위해서 솥을 엽니다.

 

이런 분위기에 대한 기억은 다들 하나씩 있잖아요

 이렇게 지금은 접하기 쉽지 않아져버린 오래된 일상같은 모습들이 영화 곳곳에 그려집니다. 한국적 아날로그 감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런 감정은 영화속 소품들에서도 드러납니다. 병에 담은 김치, 팔각 성냥갑, 가루약과 같은 물건들을 통해서도 같은 시대와 같은 공간의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추억, 향수와 같은 아련한 감정을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우형사가 동생의 집에 들렀다가 나올때입니다. 우락부락하기만 한줄 알았던 우형사의 다른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고, 눈내리는 골목길을 걷는 우형사와 동생의 모습에서 남매간의 정이 느껴지기도 하구요. 동생이 입고 있는 '여주상고' 옷같이 오래되었지만 정을 담아 함께하는 물건을 통해서 느껴지는 감정이 특히 좋았습니다.

 

왠지 어머니들 하나씩 있을 것 같은 츄리닝

바로 이어지는 장동건과의 눈싸움 신도 웃기면서, 위로의 마음이 느껴져서 좋구요.

youtu.be/mupCFZFz-SU

 

| 리얼하게 표현된 형사의 현실

 

 갖은 사고와 실패를 이겨내면서 우형사와 동료들은 살인사건의 주범 장성민을 몰아넣고 있었습니다. 폭력적인 묘사는 이미지를 통해서 간략하게 표시하지만 영화 안에서 달리고 싸우고 고생하는 형사들의 모습은 상당히 현실적으로 보여지고 있었습니다.

 

 형사들은 단서가 나올때까지 죽어라 탐문하고, 기록, 자료를 파헤치고, 실낱같은 꼬리라도 잡힐라치면 바로 잠복에 들어가서 범인의 흔적을 찾습니다.

 

대충 쓱 보여주지만 현실적인 모습들

 영화 속의 형사들은 비주얼은 구리구리한 아저씨들이지만, 나쁜놈들을 잡는데에는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드는 멋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단서를 잡아서 급하게 출동중에 형사인 줄 모르고 경찰차가 따라오자, 차창 밖으로 수갑을 쓱 보여주는 장면처럼 충분히 현실적이고 멋있으면서 과하지 않은 장면들이 특히 좋았습니다.

 

동네 깡패같은 형사 아저씨들

 '판단은 판사가 하고, 변명은 변호사가 하고, 용서는 목사가 하고 형사는 무조건 잡는다'는 명대사도 좋았구요. 이전까지의 한국영화 속 경찰이 '투캅스' 형사들 같은 모습이었다면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이후의 영화들이 많이 거칠어지고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결과를 만들어 낸 데에는 감독의 역량도 있지만 주연배우 박중훈의 역할이 컸다고 봅니다.

 

멍이 참 잘어울리는 얼굴

 

 

| 박중훈과 장동건의 멋진 연기


 감독님도 그렇고, 주연배우 박중훈도 영화를 위해서 경찰, 형사의 실제 모습을 많이 배우고 참고했다 합니다. 그 결과 패보다 더 깡패같고 욕하고 거친 형사의 이미지를 만들어 냈습니다. 거북목에 턱을 쭉빼고 흉터가 그대로 남아있는 얼굴에 인상을 있는대로 찌푸리는 외모는 한번 보면 잊을 수 없이 강렬합니다. 그리고 니가 얼마나 무서운 놈이던 신경쓰지 않고 잡아야 된다면 거침없이 들이대는 모습은 외모와 겹쳐져서 '로트와일러' 무서운 사냥개를 떠올렸습니다.

 

물면 안놓을 것만 같은

 다른 인물들이 앞에서 묘사한 그림안의 정물처럼 멈춰있는 이미지같은 모습이라면, 박중훈의 우형사는 그 안을 마구 휘저으면서 사건과 영화전체를 살아 움직이게 만들어준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우형사를 받쳐주는 김형사 장동건 또한 잘생긴 얼굴을 어떻게든 튀지 않게 감추면서 우형사에게 찾아볼 수 없는 차분하고 단정한 면을 잘 보여줍니다.

 

한국영화 전무후무 쓰리샷 (박중훈, 최지우, 장동건)

 영화는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형사와 범인간의 숨막히는 대결을 보여줍니다. 비가오는 광산촌을 배경으로 우형사와 장성민은 더이상 숨을 곳도 도망칠 곳도 없이 마지막으로 부딪힙니다.

 저에게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영화에 스토리가 전부가 아님을 제대로 알게 해준 작품입니다. 어떤 해석이 들어가야 할지는 아직도 정확히 모르겠지만, 화면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정이 솟아오르는 경험을 하게 해 준 영화라서 더 좋아합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