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임 패러독스(Predestination, 2014)로 돌아본 영화 속 시간여행

아뇨, 뚱인데요 2021. 1. 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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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할아버지의 역설'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서 나의 할아버지를 죽인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와 같이 시간여행을 전제로 한 여러가지 물음들입니다.

 시간여행은 정말 매력적인 소재로 소설, 영화 속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아직 불가능하지만 매력적인 소재이기 때문에, 영화 속에서 다양한 형태, 방법으로 주인공은 시간을 거슬러 갑니다.

 

케이블 TV에서 해주고 있길래 타임 패러독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오직 타임 패러독스 하나만 생각했을 때 어떤 영화가 나오는지 확실히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게 된 김에 영화 속에서 '시간여행'은 어떤 모습으로 나오는지 모아보았습니다.

 

영화를 보고나면 달리 보이는 포스터

 글에는 스포일러와, 감상을 방해할 만한 요소가 들어있습니다.

시간여행을 소재로 하는 영화를 모아보긴 했는데, 제가 갈라놓았다 뿐이지 이게 전부는 물론 아닙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과거의 나로 돌아가기 (타임루프)

형식: 혼자,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감 
영화: 사랑의 블랙홀, 엣지 오브 투모로우
특징: 반복되는 경우가 많음, 타임패러독스 없음

 

 주인공이 하루 정도의 짧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과거의 내 몸으로 돌아가는 것이어서, 내가 두 명이 된다는 식의 패러독스를 경험하지는 못합니다. 짧은 시간을 올라가기 때문에 현재로 Back하는 과정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인공은 반복되는 시간동안 무슨 짓을 해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타임루프에 갇힌 형태로 많이 묘사됩니다. 단순한 형태의 시간여행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동료라도 있었지

 빌 머레이의 사랑의 블랙홀(1993)이 가장 유명하고, 타임루프가 반복될 수록 주인공들이 비극에 빠진다는 내용의 영화가 많습니다. 레트로엑티브(1997)도 있고, 최근에는 이런 형식의 타임루프에 톰크루즈 형님의 액션을 더한 엣지 오브 투모로우(2014)도 있었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밝히길, 사랑의 블랙홀의 빌 머레이는 약 1만년 정도 반복되는 하루에 갇혀있었다고 하는군요. 영화 밖에서 한 이야기니까, 그냥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2. 과거의 내가 되었다가, 다시 돌아오기

 

형식: 혼자, 과거의 내가 되어 현재를 바꿈

영화: 나비효과,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특징: 타임패러독스 가능, 시간대 여러개, 시간여행의 결과로 현재가 크게 바뀜

 

인과관계의 무서움

 주인공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과거 자신의 몸으로 돌아갑니다. 과거에서 행동을 하고 나서 원래 시간대로 돌아오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런 종류의 시간여행에서부터는 과거의 시간대와 현재의 시간대를 나누어서 영화에서 보여줍니다. 과거의 사실과 원래 시간대의 상황을 주인공 혼자만 알고 있고, 다른 인물들에게는 변화가 없던 것처럼 받아들여집니다.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 과거의 자신을 만날 수는 없지만, 과거의 나와 관련있는 인물, 사건을 바꿀 수 있습니다. 나비효과(2004)가 유명한 영화입니다. 주인공의 과거의 자신으로 거슬러 올라가 사건을 바꾸면, 현재로 돌아온 순간 바뀐 과거로 인한 사건의 파장이 머릿 속에 한번에 들어옵니다.

 

 그렇다면, 과거에 내가 일으킨 사건들이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과거로 돌아간 상태에서 아버지에게 해를 가한다면, 나 또한 없어지는 방식의 시간여행입니다. 많은 영화에서 과거로 돌아가면 그런 일이 있을까봐 조심합니다. 하지만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2014)의 울버린은 그딴거 생각하지 않습니다. 과거로 돌아가서 사람도 죽이고, 죽은 사람도 안죽게 만들고 하는데, 영화도 그런 고민은 없이 만든 것 같습니다.

아무리 어려웠어도, 이 제목은 번역을 했어야

 

3. 과거로 돌아가기, 운명론적 시간여행

 

형식: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감. 역사대로 행동함.
영화: 12몽키즈, 엑설런트 어드벤처
특징: 과거의 나를 만날 순 있지만, 타임패러독스 불가능

 

 타임패러독스를 해결하려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방법이 운명론적 시간여행입니다. (잘 몰라서 일단 되는대로 이름붙였습니다.) 문학 예술적은 측면에서 잘 어울리는 방법으로, 대표적인 영화로는 12몽키즈(1995)가 있습니다.

미래를 바꾸려 했는데 운명에 갇혀버린

 주인공은 과거로 가서 행동하지만, 그 행동은 이미 역사에 기록된 '진짜 과거'의 일이었습니다. 내가 과거로 돌아가서 아버지를 해치는 것은 가능한 선택이지만, 내가 여기 존재한다는 것은 과거로 돌아간 내가 아버지를 해치지 않았다는 결과물입니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자유의지, 선택을 뺏어간 운명론적인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런 요소가 비극적인 이야기로 잘 통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이 나쁜 일을 벗어나려 최선을 다해 행동하지만, 결국 모든 일이 운명의 손바닥 안이었다는 이야기. 인간이 소설을 만들어낼 때부터 있었던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12몽키스에서는, 2035년의 주인공이 1990년으로 돌아가서 자유의지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모든 행동은 1990년의 주인공이 기억하고 있던대로였습니다. 영화 안에서도 과거로 돌아가 행동한다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가 바뀌진 않는다 말합니다.

 

 이걸 코믹한 분위기로 풀면 엑설런트 어드벤처가 됩니다. 2035년 미래의 내가 1990년 현재의 나를 도와주겠지? 시간대는 하나여야 하니까. (시점만 바뀌고 12몽키스와 똑같습니다.) 앗, 미래의 내가 도와줘서 문제가 방금 해결됐네. 엑설런트! 입니다. 패러독스를 해결했다기보다는 피했다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미래의 내가 로또 번호를 주지 않았으므로, 타임머신은 없는 것

 

 

4. 과거로, 현재로, 열려있는 미래

 

형식: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감, 행동하는대로 막 바뀜
영화: 백 투 더 퓨처
특징: 과거로 돌아가서 무엇이든 가능함, 타임패러독스 가능

 

상당히 복잡한 형태의 시간여행입니다. 2020년의 주인공이 1990년으로 돌아가면, 아버지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태어나는 것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내 존재가 사라집니다. 이 상황의 타임패러독스는 위와 같은데, 너무 확 사라져버리면 영화를 만들 수 없으니, 일종의 유예기간을 영화적 허용으로 만들어 준 것이 백 투 더 퓨처(1985) 입니다.

타임머신 이전에 날아다니는 자동차부터

 백 투 더 퓨처에서는 과거에서 무엇인가 바꾸면, 현재에도 영향을 줍니다. 하나의 흐름인 것처럼 보이지만, 2편에 와서는 슬쩍 그게 아닌 척 합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영화속에서 해결되지 않는 물음을 남겼습니다.

 

 '1980년의 주인공 마티가 2010년으로 온 상황에서 2010년의 비프는 1950년으로 갑니다. 비프가 1950년에서 과거를 바꾸게 되면, 2010년에 있던 1980년 출신 마티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 걸까요? ?? ???'

 

 이미 1980년의 주인공 마티가 2010년으로 와버리면, 마티 없는 30년이 되었어야 하지만, 그건 넘어가겠습니다. (영화적 허용 ㅠ)

 타임머신이 생긴다면 제일먼저 이것부터 실험해야 할 것 같습니다.

뭐라 말씀 좀 해봐요, 박사님!

5. 과거로 왔지만 못돌아감

 

형식: 일방통행형 시간여행
영화: 터미네이터
특징: 타임패러독스를 반정도 막아버림

 

 주인공이 과거의 자신을 해친다 해도 괜찮습니다. 돌아갈 길이 없으니, 확인도 못합니다. 원래 세계가 없다고 봐도 되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해치는 것에 대한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지요.

 터미네이터는 시간여행을 일방통행으로 만들어버려서 타임패러독스를 일정부분 막아놓았습니다. 과거의 나를 해치거나, 전쟁을 막는다고 해도 돌아갈 방법이 없으니, 영화 안에서 설명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백설 모양(*)을 가져다 쓴 포스터

 하지만, 또 다른 패러독스가 있었습니다. 일종의 '생성'에 대한 패러독스입니다. 현재의 사이버다인은 미래에서 날아온 터미네이터를 기반으로 스카이넷을 만들고, 스카이넷은 인류를 멸종시키기 위해서 터미네이터를 만들어서 과거로 보내고...원인이 순환해 버리는 것입니다.

 

 단순하게 비유하자면, 터미네이터 기술의 특허권은 누가 갖고 있느냐, 라고 문제가 생겨버려면 답을 낼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립니다. 

 

 존 코너의 탄생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존 코너(스카이넷)가 카일 리스(터미네이터)를 과거로 돌려보내지 않는다면? 스스로가 태어나지 않는 상황이 만들어지는데, 그럼 존 코너의 존재가 사라지나? 라는 물음이 남는 것입니다.

물어보고 올게 기다려, I'll be back.

6. 무한한 가능성의 우주

 

형식: 타임 하이스트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특징: 선택한 만큼의 우주가 생김

 

 이런 타임패러독스를 하나의 줄기로 설명하려고 한 결과가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입니다.

2020년 "지구 616"에서 과거로 가서 나를 죽이면, 내가 없는 세계(또는 우주, 또는 시간대)인 "지구 990"이 생깁니다. 주인공은 "지구 616"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지구 990"은 주인공 없는대로 살면 되구요.

 

가장 효율적으로 타임패러독스에 대한 설명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만큼 씹고 뜯고 맛보는 재미는 없어졌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핌입자도 없이 건너오는 타노스는 너무했음

7. 정면돌파

 

형식: 타임패러독스를 일으킴

영화: 타임캅, 타임패러독스, 데드풀2

특징: 한계는 없음

 

장 클로드 반담 주연의 영화 타임캅(1994)에서는 감히 시도하지 않았던 것을 시도합니다. 미래의 악당이 과거로 건너와서 과기의 자기 자신과 짜고 나쁜 짓을 벌이는데, 반담이 발차기 한방으로 둘을 같은 공간에서 접촉하게 해버립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줍니다. 막 우주가 붕괴하거나, 시간이 꼬인다거나 기존의 영화들이 침튀기며 설명한 내용을 너무 무심하게 보여줘버립니다.

의리!! 너무 잘 어울리는 한마디 

 그리고 타임패러독스건 뭐건 신경 안쓰는 데드풀2같은 영화도 있습니다. 데드풀2에서 케이블은 처음 시간여행에서는 과거의 자신과 별개의 존재로 나오는데, 두번째 시간여행에서는 과거의 나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그런거 신경 안쓰셔도 됩니다. 데드풀이니까요. 그저 웨이드 윌슨이 캐나다를 구하는 것만 즐기시면 됩니다.

안 따질테니까 3편 만들어주세요

 이 글을 쓴 원인이 된 타임 패러독스에서도 현재의 주인공이 과거의 주인공과 만나게 됩니다. 영화에서 감독과 작가는 타임 패러독스에 대한 그간 작품들의 자세를 멀찍이허 바라보고 한마디 던지는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의 역설? 그게 진짜면 증명해봐, 못하지? 그럼 내맘대로 찍는다' 라고요.

 

고민 잘 해봐, 난 간다

 타임 패러독스에 대한 평을 처음 봤을때는 반전집착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영화를 보고나니, 충분히 신경을 써서 소재를 대하는 작품이라고 느꼈습니다. 시간을 들여 보기에 나쁘지 않은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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