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스탠드 (The Last Stand , 2013)
감독: 김지운
주연: 아놀드 슈왈제네거, 포레스트 휘태커
간단소개: 미국과 멕시코 국경의 작은마을 보안관 레이(아놀드 슈왈제네거)에게 동네 주민이 총에 맞아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 도는 가운데, 레이는 멕시코의 마약왕이 호송중 탈출하여 엄청난 속도의 슈퍼카를 타고 국경을 통과하기 위해 마을쪽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다.
김지운 감독님은 '장화, 홍련', '악마를 보았다', '놈놈놈'으로 한국 영화계를 한번 훑으셨습니다. 그리고는 헐리우드에서 러브콜을 받아 건너가셨죠. 헐리우드의 자본력과 레전드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복귀작이라는 엄청난 이슈까지 등에 업고 만들었지만, '이게 맞나, 감독님 이거 맞아요?' 라고 되묻고 싶은 작품이 나왔습니다.
IMDB 기준으로 제작비가 4천 5백만 달러, 전세계 수익이 4천 8백만 달러라고 합니다. 이정도면 정말 적게 쓰고 만드신 건데, 적게 버셨네요 ㅠ
| 김지운 감독의 비주얼
보안관 레이(아놀드 슈왈제네거)는 국경지역 작은 동네에서 특별히 문제거리없이 조용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나이도 먹고 배도 나오면서 강함과 날카로움은 무뎌졌지만, 젊은 시절엔 대단한 능력의 경찰이었습니다.
그런 레이의 눈에 외지인들의 수상한 움직임이 걸립니다. 갱단들이 멕시코 국경위로 임시다리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보스가 FBI의 추적을 피해 탈출할 루트를 만들었던 것이지요.
범죄조직의 보스 가브리엘은 이송도중 탈출하여 멕시코로 도망치고 있었습니다. 헬리콥터를 이용할 것이라는 예상을 벗어나서 가브리엘은 시속 450킬로미터의 속력으로 자동차를 이용해 내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브리엘이 이용한 차는 실존하는 차구요, 쉐보레 콜벳 ZR1입니다.
6100CC 배기량, 800마력, 최대토크 98.9kg.m, 최고속력 340km/h 입니다.
아스팔트위를 달리는 괴물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간단하게 비교해보면, 현대 아반테가 1600CC 배기량, 124마력, 토크 15.9, 되네요.
김지운 감독이 '달콤한 인생'에서부터 갈고닦은 비주얼 장인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할만한 매력적인 소재입니다. 영화 초반, 가브리엘이 경찰 호송차량에서 탈주하는 장면은 상당히 간결하면서 긴장감있게 표현되었습니다.
실력있는 범죄조직의 보스가 확실하구나 느낄 수 있도록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탈출하고, FBI의 추적을 따돌립니다.
하늘을 날아서 가지 않고 지상으로 가는 이유도 납득이 갑니다. 국경을 넘으려는 마약조직 보스를 막으려면 공항부터 뒤질텐데, FBI가 헛다리 짚을 시간에 시속 400킬로미터로 미친듯이 달려가는 작전입니다. 조직보스 가브리엘의 개성과 똘끼를 보여주기에도 적당한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도로 위에서 헬리콥터와 자동차의 추격을 따돌리는 장면은 그래서 굉장히 멋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직 영화는 반이나 남아있다는 것이 함정이었습니다.
| 슈퍼카의 질주와 시골마을 보안관의 대결
레이와 동료들은 가브리엘의 탈출통로인 다리를 찾아냅니다. 이미 갱단의 조직원들은 다리까지 가는 길을 뚫기 위해 동네주민까지 살해했습니다. 갱단과의 첫 교전에서 부하경찰까지 잃은 레이는 자신들의 힘으로 갱단을 막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레이가 민병대를 조직하면서부터 이야기가 살짝씩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상식적인 경찰이라면 저쪽은 자동소총을 들고 로켓포까지 있는 범죄조직인데 경찰은 둘뿐이고 민간인을 동원해서 대항을 한다는 계획을 세우면...안되지요.
분명 레이는 FBI와 연락을 취하고 있었고 서로 사실관계확인이 끝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FBI는 레이의 말을 믿지 않고, 레이는 FBI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 합니다. 대체 왜요? 무기, 병력 전부 열세인 상황인데 바리케이트 정도는 쌓을 수 있다고 쳐도 다 때려막고 지원군을 기다리는 것이 전략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말이 될 것 같은데요.
가브리엘의 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 경찰이 다리를 짓는 현장을 봤구요, 서로 총격전이 벌어지고 양쪽에 사망자가 발생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럼 계획이 탄로났으니까 다른 루트를 알아보거나 당장 마을로 달려와서 증인을 없애거나 해야 정상일텐데,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마을로 어슬렁거리며 쳐들어 온다니요.
레이의 동료들과 갱들의 결전은 꽤나 진지합니다. 그런데 영화가 마을을 지키려는 레이의 편을 과하게 들어주고 있다보니 조금씩 긴장감이 어긋나버립니다. 쳐들어오는 사람들은 살벌한 갱단입니다. 그런데 주무기 소총이 고장났다고 뒤돌아서 도망치다 조명탄 한방에 폭사하는 어이없는 액션들이 자꾸 나오는 식입니다.
결국엔 작은 마을 한가운데로 가브리엘의 ZR1이 달려들어옵니다. 멋지게 잘빠진 스포츠카가 옥수수밭에서 숨바꼭질 하는 장면을 보면, 기발하고 신선한 모습은 보이지만, 기대했던 화끈함은 많이 부족해 보입니다. UFC경기장을 만들어서 기대에 부풀었는데, 중학생이 투닥대는 것을 보는 기분이랄까요.
정말 기대에 비해서 후반으로 갈수록 기운이 많이 떨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가장 큰 패인은 무엇보다도 아놀드 슈월제네거를 너무 오래된 느낌의 인물로 묘사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터미네이터 3를 2003년에 찍고나서 은퇴한 후였습니다. 주지사하시고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복귀하신 분인데 좀더 간지 넘치고 멋짐이 터지는 터프한 느낌을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을 것 같습니다. 김지운 감독님의 의도도 물론 있겠지만...이게 참 아쉬운 건 사실이네요.
| 김지운 감독의 개그
저는 김지운 감독의 최대 장점은 개그라고 생각합니다. 진지하게 달려드는 인물을 엉뚱한 상황에 가져다 놓고 반응과 함께 한두마디 툭툭 던지는 그런 느낌이 재미있어서 좋았습니다.
'반칙왕'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분위기가 그랬고, 악마를 보았다에서도 엉뚱하게 군인 트럭을 얻어타는 최민식의 반응에서도 잠깐씩 보이는 느낌이죠.
라스트 스탠드 제작관련 글을 보면, 처음에는 리암 니슨을 주인공으로 하려다가 아놀드 형님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가벼운 분위기를 추가하게 되었구요.
가벼운 분위기가 되는 것은 좋은데, 웃음코드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미국 사막에 김지운 감독의 유머를 넣으려니 들어가지가 않는 느낌입니다. 레이의 주변 조연들의 경우가 딱 그런 것 같습니다. 분위기를 가볍게 하라고 넣었는데, 전혀 웃기지도 않고 총싸움에 도움되는 능력도 없습니다.
김지운 감독의 개그센스를 제일 잘 표현하는 배우는 송강호님이라고 생각합니다. 밀정 같은 곳에서도 긴장감이 감도는 기차안에서 '나보고 어쩌라고' 한마디 툭 던지면 피식하고 웃음이 나는 스타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걸, 헐리웃 영화에 입히는 과정이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웃음과 같은 문화차이는 특히 어려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지운 감독님은 라스트 스탠드 이후 보란듯이 한국에서 밀정을 만드시면서 건재함을 과시했습니다. (그 다음 작품이 인랑인 것은 비밀) 아마 본인이 싫어하실지도 모르지만, 웃음기 싹 빼고 딱 한편만 더 헐리우드에서 만들어 주시면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덧>
다니엘 헤니도 나옵니다. 그런데 엑스맨에서 권총쓸 때보다 임팩트가 더 없어요, 대사도 없구요 ㅠ
이럴거면 쓰질 말지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