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1989): 담담하게 전하는 사람의 우정과 인간애

아뇨, 뚱인데요 2021. 4. 6.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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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Driving Miss Daisy, 1989)
감독: 브루스 베레스포드
주연: 모건 프리먼, 제시카 탠디
서비스 플랫폼: 넷플리스 WAVVE(웨이브)

 

세월이 흘러도 명작은 명작이었네요.

간단소개: 고령의 데이지 부인은 익숙치 않은 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낸다. 아들 불리는 어머니를 걱정하는 마음에 운전기사 호크를 고용해 주지만 데이지 부인은 아들의 호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괜히 명작이 아니었네요. 머릿속으로는 '아 그영화, 알지.' 하면서도 막상 시간을 내서 보지는 않고 있었습니다. 안 보고 상상만 하는 것이랑 직접 마음으로 공감하며 보는 것이랑은 다른 일이네요.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에게 생각과 함께 위로를 건네는 따듯한 차한잔 같은 영화였습니다.

글에는 영화의 중요 내용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스포주의!)

 

호크와 데이지 부인, 아들 불리

| 세월과 함께한 우정, 동료애


 데이지 부인은 꼬장꼬장하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할머니입니다. 아들은 장성해서 결혼까지 했고, 번듯한 사업체의 사장님이라 돈걱정은 없이 살고 있습니다. 남편은 먼저 보내고 혼자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 데이지 부인이 나이가 있어서 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내자, 아들인 불리는 운전기사 호크를 고용해서 어머니를 돕게 합니다.

 

수완이 나쁘지 않은 호크 (모건 프리먼)

 데이지 부인은 혼자 살아온 세월만큼 고집도 있고 못마땅한 것도 많습니다. 아들내미와 며느리 하는 모습도 별로 마음엔 안드는데 운전도 못하는 늙은이 취급을 하면서 돈까지 써가며 운전기사를 고용하다니요. 아들과 운전기사인 호크, 둘다 아주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래도 내가 가만히 있으면 운전기사는 공짜로 월급받는 셈이니, 못이기는 척 일단 기사가 운전하는 차에 타고다니기로 합니다.

 

기사도 싫고 기사 고용한 아들도 마뜩찮음.

 영화는 1953년의 미국을 배경으로 시작합니다. 화사하고 따듯한 배경을 중심으로 데이지 부인과 그녀의 집에 운전수로 고용된 호크(모건 프리먼)의 이야기를 하나씩 펼쳐놓아줍니다. 특유의 강한 남부 미국식 억양과 오래된 집안의 가구들, 급한일 없이 어슬렁 거리는듯 걷는 사람들을 보면, 관객도 그 시대에 한 구석에서 데이지 부인과 호크의 대화를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월급도둑은 더 싫으니까 타기는 함

 데이지 부인은 처음엔 호크가 자신의 생활에 끼어드는 것을 거부합니다. 호크를 싫어한다기 보다는 자신이 운전도 하지 못하는, 늙은이라는 것을 거부하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호크가 말을 걸면 꼬박꼬박 대답은 해줍니다. 하얀 머리와 앙다문 표정에서부터 데이지 부인은 첫 모습에서부터 고집과 연륜이 느껴집니다. 저같으면 벌써 도망쳤을 것 같습니다.

 호크도 수다스러운 미국 남부의 아저씨이지만, 데이지 부인이 어떤 사람인지 잘 파악해서 대처를 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의 방식을 오롯이 자신이 소유하고 싶어하는 것 뿐이었지요. 데이지 부인과 호크는 서로가 삶의 방식을 인정하고 침범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조금씩 파악해가면서 서로의 삶을 인정해줍니다.

데이지 부인이 지나간 자리엔 빈통조림과 아들만...

 고집스럽고 꼬장꼬장한 데이지 부인과 때로는 유연하고 능청스럽게, 때로는 솔직하고 수다스럽게 그녀의 기사일을 하는 호크는 그렇게 흘러가는 세월을 같이 올라타고 서로를 이해합니다.

 저는 큰 에피소드는 없지만 소소하게 이어지면서 바뀌어가는 모습들이 좋았습니다. 데이지 부인은 처음에는 자신의 영역과 삶을 확실하게 구분짓고 호크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통조림 하나일지라도 '내 것은 내 것. 내 생활에 함부로 침범하지 말아라.'였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자신의 앞자리에서 늘 운전을 하는 그 모습에 익숙해질만큼 오랜 세월을 함께 하고 나서는 서로의 삶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몰아내지 않는 동료가 된 것만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호크가 자신이 내킬 때 어떻게 굴더라도 데이지 부인의 삶에 침해가 되지 않는 관계로 변해간 것이지요. 이런 관계를 보여주는 영화의 분위기가 정말 좋았습니다.

 

평범하고 자연스럽게 서로의 삶이 닿게 됨

 

 

| 절제된 표현과 조용하고 깊은 깨달음


 제가 보는 둘의 관계는 '우정'이라고 말하기엔 색이 약간 달랐습니다. 서로 감정이 있는 친구라기 보다는 정말 곁에서 오랜 세월동안 '옆에서 산 사람'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친구로서 서로 돕고 나누고 목표를 이루는 것도 물론 좋은 관계지만, 영화에서 보여주는 데이지 부인과 호크는 서로의 삶을 그냥 열심히 사는데, 삶의 한 면이 닿아있는 느낌이랄까요.


 그런데 그 세월이 오래되다보니 눈치만 줘도 서로의 속내를 알아볼 수 있는 정도에 도달한 단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감정을 크게 부풀린다거나 강요하는 것 없이 가만히 던져놓는 영화의 분위기가 특히나 좋았습니다.

큰 일도 별로 큰일 아닌것처럼

 데이지 부인은 호크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읽는 법을 잠깐 가르쳐 주지만 붙잡고 앉아서 가르친다거나 하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시키는 일을 하기 불편할테니 이거만 그냥 알고 가.' 정도의 가르침만 주죠. 데이지 부인은 흑백에 대한 편견이 없는 분입니다. 그렇다고 영화에서 호크의 인종에 대한 이야기가 부각되서 나온다던가 그로 인해서 서로의 갈등이 있다던가 하는 내용은 없습니다. 글쓰기처럼 잠깐 언급만 되고 지나가 버립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외친다거나 큰 사건을 만들어서 인물간의 감정이 높이 휘몰아치는 사건이 없다는 것이 영화의 특징이라면 특징이겠네요. 심지어 영화 속에서는 20년 가까이 흐르는데, 지금이 몇년인지 알려주어서 관객에게 시간의 많이 흘렀구나 생각도 굳이 하지 않게 합니다. 그냥, 호크가 운전하는 차가 바뀌는 거를 가끔보여주는 것 뿐입니다.

치킨 그렇게 튀기는 거 아닌데...(정말 나와요)

 과장되지 않게 사람이 사는 흐름을 보여주어서 영화는 잔잔하지만 넓고 그 속이 깊이 보이는 감정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흐르고 누구나 늙어 가는 것은 특별한 일도 아니고 크게 소리쳐서 큰 감정을 만들어낼 일도 아니지요. 특별한 일이 아닌 만큼 더 넓은 공감대를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꽃과 같이 피어났던 사람들도 시간과 함께 저물어 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오면서, 막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나이가 많아서 운전을 할 수 없게 된 호크가 자신보다 더 늙은 데이지 부인을 찾아간 모습, 기억을 점차 잃어가는 데이지 부인이 호크를 보고 아들까지 같이 알아보는 모습은 그래서 더 사람에 대한 애정을 깊이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언제나 그자리였기 때문에 믿을 수가 있었던거죠.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는 1989년에 만들어져서 이듬해인 1990년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여우주연상, 각색상, 분장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작품상을 탈만한 영화였고, 많은 사람들이 깊이 공감할 만한 메시지를 담은 명작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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