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능의 법칙 (Venus Talk, 2013)
감독: 권칠인
주연: 엄정화, 문소리, 조민수
서비스: WAVVE
간단소개: 방송국 PD 신혜(엄정화), 주부 미연(문소리), 싱글맘 해영(조민수)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여성들이다. 주관을 갖고 멋지게 살아가는 친구들이지만, 나이가 든다는 것에 변화를 느끼기 시작한다.
먼 옛날의 기억에 '싱글즈'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서울에 사는 싱글 청춘남녀들의 일, 사랑, 삶을 재치있게 그렸던 작품으로 기억합니다. 싱글즈가 2003년 작품이었으니까,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후의 이야기네요. 같은 감독이 이번에는 40대 정도의 나이를 먹은 여성들을 그린 이야기가 '관능의 법칙'입니다. 싱글즈 감독의 작품이고, 주연배우들의 이름만 보고서 적어도 한번 봐 볼 가치가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결론은, 강추는 아닙니다. ㅠ
| 설명을 덧댈 필요없이 감탄을 자아내는 배우들
영화의 최고 장점은 배우들입니다. 어떻게 이런 라인업을 만들었는지 대단하네요.
방송국 PD이면서 골드미스 신혜(엄정화)는 프로그램 제작업체의 막내PD와 술자리 후 불꽃같은 하룻밤을 보냅니다. 다음날 숙취와 자괴감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친구가 겁도없이 직장으로 꽃을 들고 찾아와서 사귀자고 하네요.
주부 미연(문소리)는 주유소를 운영하는 남편을 살뜰히 챙기면서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습니다. 남편과의 사이도 좋은 것 같구요, 미연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남편에게 요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다만 남편이 조금 벅차하는 것 같긴 합니다.
혼자 살면서 딸아이를 키운 해영(조민수)는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나이 또래의 남성과 썸을 넘은 만남도 하고 있구요. 딸아이한테 시집을 가라는 잔소리가 늘어가는 와중에 딸이 덜컥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영화는 세 인물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맞게 되는 삶의 모습을 재미있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인공 세 친구들과 남편, 연인 주위 인물들도 그렇고 연기로는 뭐라 얹을 말이 없습니다.
코믹한 장면, 진지해야 할 장면의 톤을 조절하는데 설명이 따로 필요없고 그냥 배우들을 따라가면서 즐기기만 하면 됩니다. 주된 스토리 라인만 3개가 서로 엮이는 일 없이 분위기가 전부 다른데도 영화가 잘 흘러가는 건, 전적으로 배우들이 캐릭터를 확실하게 맡아서 이끌어준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 나이든 만큼, 거침없는 이야기 진행
영화는 나이가 40정도 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캐릭터의 최고 장점이면서 영화의 장점은 이야기에 거침이 없다는 것 같습니다.
결혼도 해봤고, 사람들도 만날만큼 만났고, 회사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사람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다 알만큼 안 인물들입니다. 좋아하면 제대로 표현하고 그런 감정을 화면으로도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화면이 야하고 노출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연애하는 사람들끼리, 부부끼리 할 수 있는 성적인 표현이나 이야기 같은 것들도 '다 아는 사람끼리 숨길 게 뭐있나' 하는 마음인지, 망설임이 없습니다. 좋아하는 사람끼리 자는 게 불법도 아니고, 고민할 시간 없다는 거죠.
망설이지 않는 건 인물들의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어설프게 숨기고 '사실은 그게 아니었는데', 라던게 '저사람이 나를 안 좋아하면 어쩌지' 고민하고 이런거 전혀 없습니다. 마음에 들면 표현하고, 사귀자면 예스 or 노 확실하게 말해줍니다. 캐릭터들이 끙끙 속앓이 하면서 관객들 답답하게 하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신혜(엄정화)와 젊은 애인 재윤(황현승)은 서로 나이차가 빚어내는 문제들도 있지만, 진심으로 신혜를 생각하는 재윤의 마음이 전달되면서 신혜는 점차 마음을 엽니다.
주부 미연(문소리)는 침대에서 남편 재호(이성민)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합니다. 인삼으로 깍두기 담글 기세로 열심히 부부의 웃픈 이야기들을 보고 있자면 가슴 한편이 짠한 기분이 드네요. 힘내세요 성민이형.
| 배우들을 막아서는 뻔한 스토리
이런 좋은 연기와 배우들의 활약을 뒤로하고, 영화는 중반 너머 식상한 이야기로 빠져버리고 맙니다. 초반에 캐릭터 소개를 볼때 생각한 것이 있었습니다. 커리어우먼 신혜(엄정화)가 버럭하고 빡치는 에피소드가 많이 나오고, 주부 미연(문소리)은 부부사이의 웃픈 분위기가 나오는데, 설마 남은 한명이 병걸려서 아프고 슬픈 분위기로 나가는 건 아니겠지, 라구요.
왜 아니겠어요. 딸까지 시집보낸 해영(조민수)는 많이 아파서 수술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중후반 갈등을 이어가는 전개가 왜이리 뻔할까, 안타까워 하는 것도 잠시, 미연(문소리)의 남편은 바람을 피우다가 걸립니다.
진짜 나이먹은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는 배우자가 바람피우고, 병걸려서 수술하는 이야기밖에 없는 것인가요. 이야기 진행에 곁가지가 없고 빠르다는 것이 앞에서는 장점이었는데, 중후반 가면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합니다. 복선도 없고 배아프다 그러자마자 바로 다음 장면에 암이라고 수술하자는 장면 전환을 보면, 이거 웃기라도 넣은 장면인가 느껴질 정도로 급하게 마구 달려갑니다.
| 관객의 감정을 기다리지 않는 다급한 이야기
암판정을 받은 해영(조민수)는 수술을 하고, 그동안 만나고 있었던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말합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나지만, 해영은 자신의 몸에 주머니(장루)를 달고 다니게 됩니다.
후반 들어서 해영의 이야기가 감정의 중심을 가져갑니다. 병때문에 아프고, 그것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도 헤어지고, 수술 후에 다시 만나게 되는 이야기의 흐름은 관객의 안타까움과 간절함을 이끌어내기에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영화는 관객과 캐릭터를 마구 때려가면서 감정을 끌어내는 것 같았습니다.
여성, 남성을 떠나서 수술을 받은 후, 달라진 몸을 가지고 사는 캐릭터를 보여주려면 충분히 시간을 갖고 인물의 힘든 상황과 감정, 그것을 이겨내는 과정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해영을 좋아하는 성재(이경영)와 카메라는 해영을 기다려주지 않고 막 들이댑니다. 영화를 보던 관객이 캐릭터를 그만 좀 괴롭히라고 느낄 정도였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연기를 하는 조민수씨가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정해진 상영시간동안 많은 캐릭터의 이야기를 다 담아내야 한다는 것이 쉬운 작업은 아닐 것 같습니다. '관능의 법칙'은 멋진 배우들의 연기와 즐거운 분위기로 풀어낸 어른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상당히 좋은 느낌도 있습니다. 다만, 작품 안에서 이야기의 흐름을 생각할 때,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보다 어떤 이야기를 하지 않느냐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
아쉬운 영화였습니다.
<TMI>
카메오로 권보아씨가 나오네요, 보아님 연기 다시 도전하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