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TV

러브씬넘버# (2021): 익숙하지 않지만 솔직한 감정의 멜로드라마

아뇨, 뚱인데요 2021. 2. 7.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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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씬넘버# (2021)
연출: 김형민
주연: 김보라, 심은우, 류화영, 박진희, 김영아

 

 

23,29,35,42 처음에 의미를 모르고 드라마 회차인 줄 알았어요

 

간단소개: 23살, 29살, 35살, 42살의 여성 주인공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나이에 맞춰 겪게되는 삶의 감정과 사랑이야기. 

 

 사랑이야기하면 보통 로맨틱코미디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남녀 주인공이 의도치 않게 엮이게 되고, 서로의 삶의 방식을 주장하면서 티격태격 왔다갔다 하다가 한순간 어머 심쿵, 하게 되어 마음이 나도 모르게 막 피어나서 결국엔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고 잘 살게 된다는 이야기.
 아무래도 가장 관객들이 편안하게 볼 수 있고 흥행이 안정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로맨틱코미디가 흔하게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합니다.

 러브씬넘버#는 티격태격과 코미디를 상당부분 덜어내고 주인공들의 삶과 그들이 느끼는 감정,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고 있는 멜로드라마입니다. 옴니버스식으로 한 주인공마다 2편씩, 총 8부작의 드라마이며 WAVVE에서 전편을 볼 수 있습니다. MBC에서도 월요일 밤 11시에 방송됩니다.
 참고로 이 드라마 19금입니다. 화면에는 19금에는 조금 약하지만, 연령제한에 어울릴법한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눈도 깜빡 않고 집중하게 되는 분위기

 

글에는 드라마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며, 감상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스포주의)

 

| 23살, 실패에도 돌아오는 탄력

 

 

 

대학생 남두아(김보라)는 아주 특이한 연애를 하고 있습니다. 
연하이면서 자신에게 아주 살가운 시한, 대학원생이고 유식한 상우, 몸도 좋고 성적매력이 넘치는 다함까지 세명을 동시에 만나는 것입니다.
두아 스스로는 자신의 연애에 만족하지만 학교익명게시판에 자기의 사진과 함께 자기를 저격하는듯한 글이 올라오면서 상황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찐따였던 저는 오락실이나 PC방을 전전했을 나이대라서 무슨 말인지 공감하기는 힘들었지만, 어린 나이 친구들의 '연애' 이야기를 생기있게 하고 있습니다.
 네 편의 이야기 중 가장 코믹한 요소들이 많이 들어가 있고, 서로의 존재를 몰랐던 남친들 세명이 서로 얼굴을 붉히며 마주하게 되는 장면이나 그들이 벌이는 일을 보고있자면, 손발이 오그라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웃음을 짓게 됩니다.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는 장면, 안돼애~~~!

 

 중간에 익명게시판의 사진 때문에 미스테리 스릴러 분위기로 이야기가 새는데, 많이 튄다고 느꼈습니다. 코미디로 사용하기에 적당하지 않은 소재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몰래 사진을 찍은 범인을 의심하는 이야기를 너무 무겁게 가져가려고 하다보니 전혀 다른 이야기 두 개를 붙여 놓은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23살의 두아는 자신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랑에 크게 실패합니다. 실패할 수밖에 없겠지요. 남자들이 그 상황을 미리 알고 동의한 것도 아니었고. 상황을 수습하고 자신의 사진을 인터넷에 올린 사람을 찾기 위해 두아는 모두를 불러 차분하게 정리합니다.

 

 저는 주인공이 이렇게 나서서 해결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살다보면 뜻하는 대로 되지 않고, 자신이 피해를 입히거나 입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한가운데 있는 일에 대해 조곤조곤 설명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23살이라면, 드라마는 실패를 한다해도 충분히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탄력이 있는 나이라고 설명합니다. 저는 그렇게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는 실패도 올바르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하고 담백하게 의견을 전합니다

 

 두아를 연기하는 김보라의 연기 톤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허둥지둥 성급하게 코미디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지 않고
차분하게 꾹꾹 눌러담으면서 상대방에게 마음을 전하는 장면이 마음에 남습니다.

 

| 29살, 차선이 아니라 최선. 내가 원하는 것

 

 

 

초등학교 교사 이하람(심은우)은 정석과 결혼을 약속한 사이입니다.
하람은 정석과 결혼을 하기로 했지만 그를 정말 사랑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합니다.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 하람은 결혼식장에서 도망칩니다.

 

 

 

 

 저는 29살의 이야기가 제일 좋았습니다. 하람과 정석의 이야기는 불꽃같은 사랑을 원하는 하람의 바람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가 본 영화와 드라마를 통틀어 제일 웃픈 베드신이 나오기도 합니다. 하람만을 다룬 두시간을 떼서 따로 보여줘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만큼 매력적인 캐릭터와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저, 저 표정 .. 남편 화이팅 ㅠ

 

 하람은 초등학교 교사이고, 정석은 중학교 교사입니다. 하람의 어머니는 홀로 하람을 키우면서 많은 고생을 했고, 하람은 그녀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주인공을 괴롭히거나 핍박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인공을 둘러싼 사건과 배경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하람의 마음이 잘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하람은 결혼식장을 탈출하여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로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합니다.

 

 

멋짐이라는 것이 터졌다

 

 홍콩 누아르의 명작 '천장지구'의 바로 그 장면을 오마주한 장면같습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주인공과 그녀를 뒤에 태우고 달리는 남주인공.

 2021년의 그 장면에서는 남자주인공의 등에 기대어 탈출당하는 장면은 없습니다. 오토바이는 혼자 드레스입고 달려줘야죠. 장면도 멋있거니와 그 의미도 잘 어울리는 아주 멋진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조의 품격

 

 웨딩드레스 질주는 더 멋잇고 과감하게 찍어도 됐을 것 같습니다. 원조라거나, 최초라고 할 수는 없어도 그 임팩트 만큼은 인정해줘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강한 느낌을 만들어 내 주는데에는 하람역의 심은우 배우의 연기가 굉장히 큰 역할을 했습니다.

 무표정하면 좀 무서운 얼굴인데, 하나에 꽂혀서 정신이 팔리도록 집중하는 표정이 굉장히 매력있습니다. 등장인물이 집중하는 대상에 영향을 많이 받았고 그로 인해 변하고 있는 인물과, 극의 흐름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연기를 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집중하는 모습을 집중해서 봅니다

 

 하람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제일 원하는 것을 찾으려고 합니다. 누군가는, 혹은 스스로가 돌아보면서, '그래봤자 똑같더라'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원하는 것을 찾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라면 내가 원하는 대로 해야겠지요.

 

 

| 35살, 생경한 감정들 사이에서 길을 잃음

 

 

 

영화작가인 윤반야(류화영)는 복잡한 사랑과 삶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만나고 있는 남자는 아내가 있었고, 그때문에 일자리도 잃습니다. 난처한 상황에서 선배 지성(김영아)덕분에 숨통이 트이는가 했습니다만, 존경하는 교수에서 연인이 된 남자 성문(김승수)가 선배 지성의 남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반야는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이야기는 많이 어려웠습니다.
 상황과 사건이 마구 엉켜있어서 감정 또한 좋고 나쁨이 딱 갈려서 표현되지 않았습니다.
과거의 사건에서부터 인연이 얽혀서 감정이 나오는데다가, 설정도 우리나라 현실과 벗어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작가라는 직업에 대한 고충, 창작을 위한 그들의 감정을 공감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거기에 서로를 향한 사랑과 미움, 질투, 연민까지 하나로 멈춰있지 않고 변화합니다.

 

 그 한가운데에 있는 반야라는 인물의 감정이 사랑, 두려움인지, 복수의 분노, 어떤 것으로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이어서 공감하기가 많이 힘들었습니다.
 사건이나 숫자가 아니라 감정의 흐름과 변화를 나타내기엔 드라마가 보여주는 방법이 단순했던 것도 같습니다. 결국 하다하다 너무 어려우니까 한번에 정리해서 과거 이야기를 설명해 주는 장면도 있습니다. 서로간의 감정이나 관계를 드러내주는 소품이나 상징이 있었다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어렵죠?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반야의 이야기에서는 과거의 이야기, 현재의 이야기가 한꺼번에 나오고, 분위기가 많이 다른만큼, 화면과 배경이 전달하는 이미지와 분위기에 많이 영향을 받았습니다.

 반야가 처음 살고 있었던 숙소를 보면 잘 안풀리는 작가인 반야의 상황과 성격을 아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쌓여있는 책, 현관 근처에 짐들과 구두, 그리고 그 사이에서 빔프로젝터를 보는 주인공. 
 신경써서 소품을 꼼꼼히 배치하고 어우러지게 촬영한 노력이 보이는 화면이었습니다.

 

 

쌓여있는 소품에서도 이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 42살, 단절을 받아들이고 변화를 포기하는 나이

 

 

 

정청경(박진희)는 남편과 함께 가구제작일을 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젊다고 느끼는 나이가 지나버린걸 알게 되고, 남편 또한 그렇다는 걸 알아가던 어느 밤, 남편 운범(지승현)이 새벽에 문자를 받고 몰래 집을 나가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감독과 작가가 바라보는 40대의 삶은 피곤하고 지치고 굳어져 가는 것이었나 봅니다. 청경은 한편으로는 생기넘치는 삶을 살고싶은 욕심이 있지만, 남편과의 생활과 생업에 치여서 사소하게 시도해보는 생활의 활력도 제대로 결과를 보지 못합니다.

 

승부(!) 아이템

 

 생각하다보니 생각해서 생각 다 한거니까 말할 필요조차 없게 되는 관계, 청경에게 남편은 그런 동업자이자 동반자의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남편의 외도는 청경에게 온 삶이 무너지는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청경은 남편의 외도와 관련된 사항을 하나씩 밝혀냅니다. 누구와, 언제부터, 왜. 그리고 그에 대한 응징을 하나씩 하려고 합니다.

 청경과 남편의 갈등에서 느꼈던 감상은, 바람 피운 사람에 대한 응징조차 피곤하고 힘들어서 중간에 포기하는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의 외도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청경을 바닥에서 한걸음 더 파고들어가게 만들지만, 그녀에게 제대로된 결론을 내지 못하게 합니다.

 

 

소동을 넘어선, 바닥밑 지하실 시퀀스

 

 이것은 그녀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하는 욕망이나 성장, 아니면 남편의 진심을 알게되는 깨달음이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남편과의 관계를 끝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 변화를 포기하고 현재를 유지하고픈 관성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만큼 이야기의 서두에서 멈춰있고자 하는 움직임이 강하게 머리에 들어왔나봅니다.

 청경은 결국 남편과의 결혼생활을 유지하려는 선택을 합니다. 그걸 바라보는 저는, 이야기가 뭔가 밥이 되려다가 물을 많이 넣어서 죽이되려다가, 그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해 다 태워버린 무언가를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남편 캐릭터를 확실히 잡지 못해서 그렇다고 봅니다.

 

 옴니버스는 따로 떨어진 이야기들이 모여서 하나의 큰 작품이 되는 형식입니다. 러브신넘버는 네 개의 이야기 모두 여성 주인공의 사랑이야기라는 주제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하나의 이야기는 요즘에 많이 보게 되는 드라마나 영화 속 사랑이야기와는 다른 분위기의 이야기를 하고 있고, 새로운 감정을 볼 수 있어서 대단히 좋았습니다. 그리고 배우 한명 한명의 연기가 굉장히 좋았습니다.

 다만 4편의 다른 이야기를 꿰어주는 공통의 무엇인가가 있더라면 구슬이 보배가 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극 중에서 공통으로 전지성이라는 인물이 등장하긴 하지만(김영아) 역할이나 성격이 일관되지 않고 작품속 비중이 들쭉날쭉해서 무언가 보여주기엔 약했다고 생각합니다.

 한시간에서 두시간정도 되는 단편극은 설자리가 많이 없는데, 웹드라마라는 형식을 빌어서 평소에 보기 힘든 이야기들도 많이 만들어주어서 대단히 감사하며 재미있게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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