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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44 (영화, 2015): 살인의 추억과 겹쳐지는 닫힌 사회의 이면

아뇨, 뚱인데요 2021. 3. 16.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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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44 (Child 44 , 2015)
감독: 대니얼 에스피노사
주연: 톰 하디, 게리 올드만, 누미 라파스 

 

누미 라파스가 포스터에 없네요

간단소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쟁영웅중 한명으로 출세길을 타던 레오(톰 하디)는 친구이자 부하 알렉세이의 아들이 살해된 사건을 맡게 된다. 살인사건이라는 정황이 분명하지만 모두가 공평한 지상낙원인 소련사회에서는 범죄, 살인은 인정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결국 레이는 알렉세이의 아들을 사고로 인한 사망사건으로 덮어버린다. 그러나 동일한 수법의 살인사건이 계속 발생하고 있었다.

글에는 영화의 중요내용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스포주의!!!)

 영화를 중간까지 봤을 때 좀 답답하고 불쾌했습니다. 소년의 연쇄살인사건을 따라가는 스토리인데 소련의 어두운 분위기까지 겹치면서 너무 보기 힘든 분위기였습니다. 아마 많은 관객들이 비슷하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아이고, 이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런데 중반 넘어가니까 '살인의 추억'이 떠오르면서 영화의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이해가 갔습니다. 과하게 어둡고 잔혹한 분위기는 버거웠지만, 영화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공감을 할 수 있었습니다.

 

| 어둠속에 사람들을 가두어 놓은 사회

 

 레오(톰 하디)는 부하의 아들의 살인사건을 사고로 덮습니다. 그시대 소련 사회는 거주 이전의 자유조차 없었습니다. 모두가 평등하고 인민의 천국인 사회에서는 범죄도 '없어야만'했습니다. 그 사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서방의 스파이가 되어 숙청당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사회였고 정보는 아무에게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레오는 자신의 아내마저 스파이로 고발해야 할 처지입니다.

레오의 아내 라이자(누미 라파스)마저 스파이로 지목되자 레오는 아내를 지키고 좌천되어 모스크바에서 쫓겨납니다. 당의 명령에 따라 언제라도 자기 목숨이 날아갈 수 있는 사회 분위기였음에도 레오는 차마 아내를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레오는 쫓겨나게 된 지역에서도 동일한 수법의 아동 살해사건이 있었던 것을 알게 됩니다. 연쇄살인이고 범인이 아직 잡히지 않았다는 것도 파악했습니다. 레오의 앞을 막고 있는 것은 범인도, 기술도 아니었습니다. 범죄는 있을 수 없다는 당의 명령, 명령을 어기면 죽음뿐인 어두운 사회였습니다. 이게 말이되나 싶은 이유인데도, 당장 목숨이 아까우면 침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부검, 증거 모두가 의미없는 사회였습니다.

 레오와 라이자는 더 이상의 희생자를 막기 위해서 조사를 시작하려 하지만, 가장 큰 위협은 이것이 범죄라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었습니다. 모든 사건은 이미 사고 아니면 정신병자의 단순범행으로 치부되어 모두 종결된 후였습니다. 연쇄살인을 인정한다는 것은 당의 완전무결함에 상처를 내는 짓이었고 이것은 반역이었죠.

 레오와 라이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모스크바까지 몰래 돌아와 목격자를 인터뷰하고 사건을 조사합니다. 범인이 권력자의 아들같은 것도 아니고, 단순히 사건을 조사하는 것이 죽을 일인가 답답하고 억울한 일입니다. 인간 사회라는 것이 모두가 인정하고 돌아가면 다들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특성을 갖습니다. 

지상낙원이라고 하는데 자유는 없습니다.

 레오와 라이자는 결국 종결된 사건을 다시 수사하다가 수사기관에 발각되고 사회에 불만을 가진 반동분자가 됩니다. 그들의 목숨을 누가 언제 뺏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처지에서 갖은 고초를 겪습니다.

 

 살인의 추억에서 나타난 사회가 어둠을 강제로 만들어 내고 새로운 사건에 대처할 수 없는, 갇힌 모습이엇다면, 차일드 44에서 보이는 사회는 한층 더 폐쇄적이고 사람들에게 하나만 볼것을 강요하는 감옥과 다름없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생각과 짐작을 하지만 도저히 그 모습을 상상하기에도 힘이 듭니다. 그래서 영화가 어렵지는 않지만 보기에 불편하고 힘들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레오와 라이자는 정말 죽을 고생을 하며 살아남습니다.

 

 

| 미결의 실제사건과 다른 점


 레오와 라이자는 정말 처절하게 살아남습니다. 라이자의 루미 라파스는 정말 그녀가 아니면 해낼 수 없을 정도의
생존을 위한 싸움을 표현해냅니다.

누미 라파스하고 싸우면 백프로 집니다.

 레오와 라이자는 결국 범인을 찾아내고 진실을 밝혀내고야 맙니다. 소년을 계속해서 죽인 살인마는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 아래에서 만들어진 괴물이었습니다.

 이 모든 사실은 당연하게도 공개되지 않고 묻힙니다. 보는 사람들을 힘들게 했던 이야기는 마지막에 가서는 숨을 쉴 수
있는 틈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적어도 범인을 잡고, 레오와 라이자가 자신들이 살인을 외면했다는 죄책감도 덜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고 있었습니다.

강력반을 만들어서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합니다.

 이런 면에서는 '차일드 44'는 살인의 추억과는 사뭇 다른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두 영화 다 어두운 사회 속의 해결되지 않은 살인사건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직접적으로 필름 밖으로 관객에게 말을 걸었다면, 차일드 44는 영화 안에서 관객에게 충격과 위로를 둘 다 주고 있었습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어둡습니다. 1950년대의 소련사회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무래도 밝음이나 희망보다는 갑갑함을 느끼는 것이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 같습니다. 폭력이나 인체훼손에 대한 묘사도 상당히 직접적이어서 부담스럽고 기븐이 나쁠 수도 있습니다. 원작 소설에서는 스토리도 더 풍부하지만 소련 사회에서 강제이주당한 사람들에 대한 묘사도 더 심하다고 하네요.

인물보다 사건에 집중하는 해외판 포스터

 강추드릴 정도는 아니지만, 살인의 추억과 비교해 보기에는 적절한 영화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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