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더 비기닝 (The Accidental Detective, 2015)
감독: 김정훈
주연: 권상우, 성동일
간단소개: 아마추어 탐정이면서 만화방을 운영하는 강대만(권상우)는 경찰친구 준수(박해준)와의 연줄로 경찰서를 들락거리면서 수사에 훈수를 두곤 했다. 어느 날 대만의 지인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준수가 용의자가 되어 수감된다. 이대로 두고 볼 수 없었던 준수는 강력계 식인상어 노반장(성동일)과 팀을 꾸려 진범을 찾아내려 한다.
자꾸 넷플릭스 추천목록에 '탐정: 리턴즈'가 뜨고 있습니다. 이광수씨가 나오는 포스터를 보고 호감이 생기는데, 차마 1편을 안 볼 수는 없어서 일단 1편을 봤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나오지 않는 범인을 찾는 탐정물입니다. 범죄를 소재로 하면 보통 액션, 누아르쪽 분위기로 많이 가죠. 분위기보다는 각본의 세밀함과 탄탄함이 있어야 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탐정영화 '후더닛'무비가 우리나라에도 있다, 정도의 의미를 가지는 작품입니다. 개봉당시 관객이 260만명 보셨네요.
글에는 영화에 대한 결정적인 정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 있습니다!!!)
| 관객을 적극적으로 부르지 않는 추리물
주인공 대만은 아마추어 탐정인데 지인의 아내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생깁니다. 용의자로는 피해자와 불륜관계에 있다고 여겨지는 자신의 경찰친구 준수가 지목되구요. 대만은 탐정으로서의 자존심, 한번 이름을 날려보겠다는 욕심까지 모아서 이 사건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탐정물, 범죄추리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입니다. 특히나 초반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많은 정보를 풀어놓아서 관객에게 범인 후보를 전달하고, 의심을 골고로 분산시키느냐에 영화 성공이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최근 영화 중에 이걸 제대로 풀어놓은 영화는 '나이브스 아웃'이죠. 명작입니다. 상대적으로 동기나 몰입같은 감정선은 힘을 많이 주지 않아도 큰 단점은 되지 않습니다. 셜록 홈즈가 피해자에 대한 연민으로 범인을 찾지는 않는 것처럼요.
'탐정'에서는 이 정보를 크게 생략합니다. 우선 첫 살인사건에 대한 상황묘사가 없습니다. 죽은 사람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해당했는지 살아있을 때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 발견된 후의 진행상황 등 묘사가 거의 없이 툭 던져놓듯이 사건이 진행됩니다.
용의자에 대한 정보도 모자랍니다. 암만 봐도 범인이 될만한 사람이 A아니면 B입니다. 그런데 B가 초반에 용의자가 되어 잡혀갔습니다. 그럼 영화 흐름상 범인은 A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 많은 탐정영화들은 의심가는 인간관계와 상황을 살해사건 전에 깔아놓습니다.
이런 밑바탕이 있어야 탐정물로서 관객들이 같이 추리를 하고, 누가 범인일지 궁금해하며 따라갈 수 있습니다. 풍성한 이야기가 없다면 그냥, 먼 발치서 옆동네 아파트에 경찰차가 왔다갔다 하나보다 하고 지켜볼 수밖에 없죠.
| 트릭의 치밀함
대만은 친구 준수의 파트너이자 강력반 형사, 식인상어 노태수(성동일)과 함께 수사를 합니다. 갈등과 시행착오 끝에 준수와 태수는 진짜 범인을 밝혀냅니다. 범인은 한명이 아니었고, 서로가 죽이고 싶어했던 사람을 죽여주는 '교환살인'으로 경찰의 수사를 피하려 했습니다.
교환살인이라는 어려운 트릭을 보여주려면 치밀하게 복선과 상황을 깔아야 합니다. 왜냐? 교환살인이라는 트릭은 이미 많이 보여졌고 실행이 까다롭다는 것까지 웬만큼 탐정소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환살인은 서로 알리바이를 입증해 주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그런데 서울 같은 곳에서 같은 경찰서 관할에 사는 사람 둘, 셋이 살해당했다면 용의자끼리 서로의 알리바이를 입증해준다는 사실이 너무 뻔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소설에서는 교환살인을 위해 7,8명 이상의 사람을 동원하지요. 들키지 않으려고요.
그리고 교환살인은 사람의 이기심때문에 실패할 가능성이 정말 큽니다. 내가 이미 목적을 이뤄서 죽이고 싶은 사람이 죽었는데, 굳이 큰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살인을 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범인들끼리도 배신하는 모습이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교환살인은 보통 영화 초, 중반에 해당사실이 밝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배경으로 쓰이거나 더 큰 사건의 다리가 되는 방식으로 사용되죠. 아니면 범인의 입장에서 범행이 서술되면서 범행의 실패, 범행을 위한 부가사건의 해결을 다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오래된 트릭이며 약점이 많아서, 사용하려면 배경과 설명이 탄탄해야 합니다.
'탐정'에서는 교환살인을 매우 중요한 장치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트릭을 알아채는 것은 증인도 아니요, 주인공이 결정적인 증거를 잡아서도 아니고 그냥 차타고 가다가 범인을 찾아냅니다. 일부러 두명 이상이 짝을지어 범행을 하는 치밀한 범인들과는 달리, 탐정이 너무 '이거다!' 찍어서 범인을 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비호감 주인공
'탐정'은 수사나 트릭에 있어서는 꽤 준수한 수준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증인을 찾고 물어보고 단서에 단서를 물고 수사해 나아가는 스텝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제가 제일 힘들었던 것은 비호감인 주인공들입니다. 대만은 탐정으로서의 연구나 활동도 아마추어로서 꽤나 한 것처럼 나옵니다. 그런데 왜 하는 짓은 초보 동아리만도 못하게 구는지 모르겠습니다. 탐정일 한다고 생업은 나몰라라 하고 아이가 둘이나 있는데 제대로 돌봐주는 모습도 나오지 않습니다. 반면 거짓말을 하고 나와서 아내와 갈등하는 것은 영화 내내 잊을만 하면 나옵니다. 알바생을 쓰던가 아내를 설득하던가 자기 문제는 거짓말로 대충 얼버무리는 사람을 누가 좋아합니까.
개그분위기로 애기를 안고 수사를 한다거나 아내와 부부싸움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개그 포인트를 심각하게 잘못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경찰인 태수(성동일)도 매한가지입니다. 욕을 입에 달고 사는 모습에서 호감을 찾기 힘들구요, 민간인을 정당한 절차 없이 수사에 동행시키는 것부터가 턱하고 걸립니다. 그래서 민간인에게 자문요원 등 형식적으로라도 처리를 하는게 보통인데, 이런 사소한 설정도 안 해주죠. 그런거 무시하고 데리고 다니기로 했으면서 꾸준히 서로 욕하고 무시하고 한번 협조를 제대로 안하는 모습을 보이니까 신나서 볼 수 없는 분위기가 되어버립니다.
탐정이 주인공인 추리물로서 탐정: 더 비기닝은 영화 속 권상우의 위치 정도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프로 탐정으로서 흥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날카롭고 전문가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 같은데요. 속편까지 나왔으니 넷플릭스에서 보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