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카 (Rebecca, 2020)
감독: 벤 휘틀리
주연: 릴리 제임스, 아미 해머
서비스: 넷플릭스
간단소개: 오래지 않은 옛날, 상류층 부인의 고용인이었던 젊은 여성이 부유한 드 윈터 가문의 주인인 맥심 드 윈터의 구애를 받아 결혼을 한다. 거대한 저택의 새 안주인으로 들어간 젊은 드 윈터 부인은 남편인 맥심의 저택 곳곳에 맥심의 전부인 레베카의 흔적이 유령처럼 남아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신작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진짜 보고 싶은 영화들은 비싸게 개별구매로 봐야만 해서 난감했습니다. 넷플릭스에서 최신 영화들만 쭉 훑다가 딜런 오브라이언 주연의 '러브 앤 몬스터스' 포스터에 끌려서 일단 클릭하고 봤습니다. 곤충 몬스터가 나오는 크리처물이었다니, 바로 포기하고 다른 영화를 골랐는데, 유령처럼 레베카가 걸렸습니다.
<TMI>
'레베카' 원작은 데프니 듀 모리에의 소설입니다. 영화로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1940년 작품이 원조입니다. 뮤지컬로도 만들어진 레베카도 같은 이야기입니다.
글에는 영화의 중요 내용에 대한 언급이 많이 있습니다. 결말까지 전부 언급하는 수준입니다. (스포주의!!)
| 히스테리를 일으키는 음산한 저택
남프랑스의 몬테카를로 해변, 돈많은 상류층 부인의 고용인으로 일하는 주인공(릴리 제임스)는 우연히 만난 부유층 드 윈터 가문의 주인인 맥심 드 윈터(아미 해머)와 사랑에 빠집니다. 여름 휴가동안 불같은 사랑에 빠진 둘은 몬테카를로에서 결혼까지 하게 되고, 그녀는 맥심의 저택 '멘델리'의 새 안주인으로 들어갑니다.
맥심의 부인, 드 윈터 부인이 된 주인공은 가문의 저택 멘델리로 들어가는데, 집사인 댄버스 부인은 그녀를 대놓고 적대시합니다. 단순한 낯가림, 텃세인 줄 알았지만, 멘델리의 속을 하나씩 알아갈수록 그것이 남편 맥심의 죽은 전 부인, 레베카의 자취였음을 알게 됩니다.
영화는 주인공의 희망찬 분위기가 무너져 가는 것을 음산한 분위기의 저택을 모습을 통해 조금씩 보여줍니다. 어딜 가든 멘델리의 전 주인이었던 레베카의 흔적이 남아 있고, 사람들은 죽은 레베카와 그녀를 비교하고 레베카의 우아함과 능력을 찬양합니다.
레베카의 흔적과 싸우다 지쳐 힘들어하는 그녀에게, 남편은 결혼 전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전 부인의 이야기를 묻기만 하면 숨기고, 이제는 부인인 그녀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느낌까지 듭니다.
멘델리라는 거대하고 낯선 상황에 놓여진 주인공의 불안한 심경과, 어딜 가던 그녀를 노려보는 댄버스 부인의 험악한 얼굴을 통해서 영화는 주인공이 느끼는 공포를 보여주려고 노력합니다. 'R'이라는 글자, 거대한 저택을 더욱 크게 보이게 하는 화면에서, 죽었음에도 멘델리를 지배하는 레베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저택 어디에서든 보이면서, 지우려 해도 끝까지 따라다니는 레베카라는 미지의 인물에 시달리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무서움도 느끼고, 히스테릭하게 무너져 가는 주인공에게 연민까지 느끼는 흐름이었습니다. 대체 레베카는 누구인지, 어떤 비밀이 있는지, 새로운 드 윈터 부인을 통해 관객은 슬금슬금 조여오는 공포를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급하게 방향을 돌려버립니다.
| 법정 영화로 유턴하는 후반
드 윈터 부인은 혼자서 레베카에 대한 정보를 캐기 시작하고 남편인 맥심과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레베카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됩니다.
맥심이 레베카에 대한 언급을 거부하는 것은 레베카를 그리워 하는 것이 아니라, 레베카에 대한 공포때문이었습니다. 레베카는 계획적으로 맥심에게 접근해서 그와 결혼을 했고,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킬까 두려워 하는 맥심의 심리를 이용해서 그를 마음대로 다루고자 했습니다.
레베카는 멘델리 저택의 집사를 비롯해 고용인들, 맥심의 가족들에게까지 영향력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레베카에게서 벗어나기 위해서 맥심은 극단적인 계획을 써야만 했습니다.
숨겨진 레베카의 진실을 밝혀지는 부분은 궁금함을 해결해 주기는 하지만, 너무 급작스럽습니다. 영화의 전반을 지배한 음험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무르익기도 전에 툭, 끊어버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저택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던 집사 댄버스 부인은 후반부에서는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서도 급박한 분위기 전환이 드러납니다.
맥심이 바다에 가라앉힌 레베카의 시신이 발견되고, 레베카가 사고사가 아니라는 증거가 드러납니다. 그리고 남편 맥심은 레베카의 살인 용의자로 체포되고 맙니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이야기와 감정을 쌓아갔던 초반의 히스테릭한 장면들과는 다르게 후반은 굉장히 빠르고 급박하게 진행됩니다. 맥심의 고백, 레베카의 시신 발견, 맥심의 체포와 재판과 결말까지. 전반부의 흐름과는 다른 영화가 되어버립니다.
전반부까지 무섭고, 궁금하고, 연민까지 자아냈던 감정의 흐름을 제대로 풀어주지 못한채 이야기의 마무리를 급하게 내는 것 같았습니다. 기-승~~~~!!!-전결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영화 자체의 분위기가 적응이 힘들고 어렵기도 해서 해외 사이트의 평을 찾아보았습니다.
* 긍정
- 전반적으로 매우 세련되고, 관습적으로 일관된 즐거움을 제공하는 영화다.
- 오래된 헐리우드에 대한 경의. 몽환적인 미스터리와 만족스러운 반전이 있는 심리 스릴러
* 부정
- 보기에는 매혹적이지만 고전적 원작의 핵심에 도달하지 못하고 영화의 가치를 증명하지 못한다.
- 사치스러운 표정만 가지고는 만족스러운 영화를 만들 수는 없다.
레베카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에 공포를 느끼는 분위기라고 생각합니다.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싸울 수도, 이길 수도 없다는 무서움이 현실을 무너뜨리는 공포가 영화를 지배한다고 느꼈습니다. 원작 소설이나 히치콕의 1940년 명작 영화를 보지 않아서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2020년의 레베카 영화는 급박하게 진행을 한 나머지 초반의 감정을 놓친 것 같아서 아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