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
(MOVE TO HEAVEN, 2021)
연출: 김성호
극본: 윤지련
주연: 이제훈, 탕준상, 홍승희
서비스: 넷플릭스
간단소개: 아버지와 함께 사는 한그루는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스무살 청년이다. 아버지와 그루는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마지막 흔적을 정리하는 유품정리사일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병으로 아들 그루만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게 되고, 혼자 남겨진 그루를 위해서 아버지가 다른 동생인 상구에게 그루의 후견인을 부탁하게 되고, 상구는 형의 재산을 보고 그루와 함께 지내게 된다.
넷플릭스 드라마의 특징은 기존 드라마에 비해 사전정보가 적다는 점입니다. 지상파나 종편의 드라마처럼 광고, 예능 홍보를 뻑적지근하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만드는 줄도 몰랐다가 어느날 TV를 틀어보면 추천에 떡하니 신작이 떠있고 순위에 막 올라오곤 합니다.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이하 무브투헤븐)도 뉴스를 접한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등장했습니다. 익숙해지면 상당히 재미있게 보실 수 있는 드라마라고 느꼈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서비스라서 여러 서비스 사이트에 등록되어 있습니다. 김새별, 전애원 작가의 에세이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 거부감을 넘어가면 찾아오는 드라마
스무살 청년 한그루(탕준상)는 아버지(지진희)와 살면서 고인들의 마지막을 정리해주는 유품정리사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루는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어서 다른 사람과 잦은 사회생활은 힘들지만 친구도 있고, 자기 일은 누구못지 않게 할 줄 압니다. 그루의 아버지 한정우가 급작스럽게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그루는 혼자 남겨지게 됩니다.
무브투헤븐의 가장 큰 단점은 아니고, 장애물은 드라마 초반의 거부감이라고 봅니다. 이야기와 사연 중심의 드라마인데, 주인공의 직업이 유품정리사이다보니, 사람이 죽고 난 뒤의 자리를 보여줄 수밖에 없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인만큼 비주얼적인 요소도 시청자에게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고독사나 살인이 있었던 자리를 치우는 일하는 모습이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주인공 그루의 상태 또한 그루의 직업과 겹쳐지면서 위화감, 이질감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그루는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습니다. 사회적 상호작용을 다방면으로 하지는 못하고 제한적으로 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당황하거나 화가나면 반복적인 자해 행동도 보이곤 합니다.
드라마의 초반에는 혹시 다른 많은 영화에서처럼 불편한 주인공을 앞에워서 눈물샘만 짜낸다던가, 주인공을 모자라고 불쌍한 사람처럼만 보이게 해서 시청자를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화면은 저같은 쫄보는 잠을 설칠 정도로 이미지가 강합니다. 다행히도 드라마의 스토리는 초반의 거부감을 잘 이겨낸다면 전혀 접할 수 없었던 새로운 이야기였습니다.
| 떠나는 길을 배웅하는 한그루의 진정성
아버지를 여의고 혼자남은 그루는 일을 하러 갑니다. 아버지에게 배워서 몸에 밴 습관대로, 그루는 먼저 고인에 대한 조의를 표하고 그들이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자리를 차분하게 정리합니다.
드라마는 사람이 떠나고 난 자리를 보여주고, 그들이 남기고 간 유품을 통해서 남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루는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기억력과 관찰력을 발휘해서 떠난 사람들의 흔적에서 이야기를 캐치해냅니다.
이 이야기들은 흥미보다는 진정성에 중심을 두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보여줍니다. 일을 시작하면 유품정리사들은 고인에 대한 예를 먼저 갖춥니다. 그리고 청소를 하고 물건을 정리하여 넣어놓고, 벽지와 장판까지 모두 철거를 합니다.
드라마는 자주 90도의 하이앵글에서 고인의 네모난 방, 네모난 상자 안에 들어가는 고인의 유품을 보여줍니다. 영수증, 가전제품의 설명서, 은행의 출금영수증 등, 삶의 흔적들이 조그마한 상자 안에 정리되는 모습이 왠지 서글픈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한그루는 고인의 유품을 통해서 전하지 못했던 고인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루는 여타 다른 사람들같은 사회생활을 하지는 못하지만, 편견도 없고 눈치를 보지도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려운 감정소비를 하느라 절대 입 밖으로 말하지
않는 고인의 마지막 메시지들을 망설임 없이 전합니다.
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사랑, 폭력은 사랑이 아니라는 단순하지만 묵직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것은, 돈과 사람에 찌들지 않은 순수한 그루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자칫 단편적인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난데없이 치고 들어오는 그루의 삼촌 상구(이제훈)가 더해지면서 이야기는 풍성해집니다.
| 잔재미와 인물들의 풍성한 이야기
상구는 돌아가신 그루의 아버지와 이부형제관계입니다. 욕은 입에 달고 살고 방안에서 누가 있던말던 담배를 피워댈 정도로 터프하고 거친 인물입니다. 상구는 그루가 있는 줄도 몰랐고, 후견인이고 뭐고 무시하려다가, 형의 유산이 쏠쏠하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루와 동거생활을 하게 됩니다.
상구를 연기하는 이제훈은 특유의 거친 매력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훈님은 박열에서의 연기가 제일 인상적이었는데요, 시그널에서도 그렇고 얌전한 느낌보다는 맞서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 적극성이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심지어 격투선수가 직업입니다. 삼각근이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엄청나게 몸을 만든 결과가 보입니다.
적극적이고 거칠게 나서는 상구(이제훈), 순수하고 분석적인 그루(탕준상), 거기에 발랄한 변수를 주는 옆집 나무(홍승희)까지 더해지면서 무브투헤븐의 케미가 상당히 즐겁게 살아납니다. 스토리로 들어가면 무겁고 진지하다가도 그루네 집에서 세명이 티키타카를 하는 모습을 보면 은근 웃기기도 합니다.
상구가 밤새고 격투장에서 일(싸움)을 하고 들어왔습니다. 나무가 잔소리좀 하려고 시동을 거는데, 용돈으로 입을 막자 바로 깨갱하는 모습에서 엄숙한 분위기를 쉬어가는 센스가 돋보여서 좋았습니다.
조연분들의 연기도 좋습니다. 중간중간 탐정물 같은 CG도 나오고요. 배우들은 최선을 다해 연기를 하고, 드라마는 그 사이사이 시청자들을 위한 쉼표를 찍어주는 역할에 충실하다고 느꼈습니다.
'무브투헤븐'은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다루기 어색하고 힘든 소재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독사, 데이트 폭력, 동성애 등, 한 에피소드마다 나오는 소재들도 다른 작품에서는 불편해서 피해갈만한 것들을 정면에서 바라봅니다.
그러면서도 사랑과 같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메시지를 들려줍니다. 전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마음을 섬세한 연기와 아름다운 연출로 빚어낸 멋진 드라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