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엑시트 (2019): 위험하고 무서운데 웃음이 지어지는, 기막히게 잘만든 재난영화

아뇨, 뚱인데요 2021. 2. 20. 06:40
반응형

엑시트 (EXIT, 2019)
감독: 이상근
주연: 조정석, 임윤아

 

처음엔 저 표정의 의미를 몰랐습니다.

 

간단소개: 취직도 못하고 부모님께 얹혀살고 있는 백수 용남(조정석)은 식구들에게 핀잔만 듣는 천덕꾸러기이다. 용남 부모님의 고희연을 하던 중, 도심에서 독극물이 든 화물차가 폭발하는 테러가 벌어진다. 용남은 대학시절 같은 동아리 후배였던 의주(임윤아)와 식구들까지 함께 탈출해야 할 상황에 몰린다.

 언제부턴가 한국형 00영화라는 수식어가 우리나라 영화에 자연스럽게 달렸습니다. 한국형 블록버스터, 한국형 첩보물 같이 영화 광고와 소개에 달리는 경우는 십중팔구 외국, 특히 헐리우드의 잘나가는 영화에서 모티브를 많이 가져왔다는
의미와 다름없었습니다.

한국형 재난영화의 대표 레퍼런스

 

 엑시트는 한국과 같은 사회와 배경에서 재난상황이 벌어진다는 상황을 가정하고, 한국에서 사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우리가 특히 잘 느낄 수 있는 감정으로 풀어준 수작입니다. 보고 나서 이런 영화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고 느꼈습니다.

글에는 영화의 내용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 있습니다. (스포주의)


| 재난에 대응하는 진지한 자세


 주인공 용남(조정석)은 부모님의 생신축하 잔치에 끌려나왔고, 파티홀 업체에서 일하고 있던 후배 의주(임윤아)를 우연히 만납니다. 지난 추억을 되새기며 감상에 빠지려는 것도 잠시, 근처에서 독극물이 담긴 화물차가 폭발하고, 독가스가 사방에 퍼지게 됩니다.

 

독안개가 퍼지는 상황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당장 멀리 도망쳐야겠죠. 하지만 독가스가 퍼져서 지상으로 대피하는게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는 이 상황에 대처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장난기 없이 진지하게 이야기해줍니다.

 주인공이 재난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게 되는 첫장면입니다. 용남이네 가족이 독가스를 피해 지상으로 탈출하려다가 실패하고, 누나인 정현(김지영)이 가스를 흡입하여 쓰러집니다. 용남과 의주는 바로 사람들을 이끌고 건물로 되돌아갑니다. 그리고 쓰러진 누나를 옮기기 위해서 즉석에서 들것을 만듭니다

 

주인공의 능력과 위기상황이 한번에 이해됨

독가스를 흡입하거나 피부에 닿으면 치명적이라는 영화속 사실.
독가스는 지상으로 퍼지기 때문에 올라가야 한다는 설정.
용남과 의주가 등반 동아리에서 배워온 능력들이 있으며 이것을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예상.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어떤 영화인지 감을 잡고 싶어하는 관객들에게 초반 용남의 헤어스타일과 함께 포인트를 딱 짚어주는 잘 만든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정석님 표정이 ㅠㅠㅠ

 

 우여곡절끝에 용남의 가족들은 구조헬기를 타고 탈출하지만, 용남과 의주는 둘만 따로 남겨집니다. 독가스는 아래에서부터 올라오고 있고, 둘은 있는 힘을 다해 달리고 피신합니다.


 둘이 대피하는 과정은 아이디어가 반짝입니다. 저런 상황이 닥친다면 꼭 기억해야겠구나 하고 배울 정도로 꼼꼼하게 잘 만들었습니다. 독극물이 피부에 닿으면 안되니 쓰레기봉투를 뒤집어 쓰고, 추가 방독면을 찾기 위해 비상등을 따라 지하철로 들어가서 파밍(;)을 해옵니다. 우리가 평소에 주변에서 늘 보지만 별 생각없이 지나친 것들이 재난상황에서 요긴하게 쓰이는 모습을 보고 놀라게 됩니다.

 

천신만고 구사일생 사람살려

 생경한 갑툭튀 재난을 한국에 들여와서 억지로 현지화 한 게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쓰고 겪는 일상에서 공감을 형성할 수 있는 재난 상황에 대한 묘사가 대단히 좋았습니다.

 

 

| 위험한 상황에 느껴지는 유쾌한 분위기

 엑시트가 좋은 영화라고 느끼는 또한가지 이유는 사람이 다치고 죽는 재난영화인데도 절망적이라던가 불편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일단, 두 배우의 연기에서 슬프고 위험한데도 웃긴 감정을 정말 잘 담아냈습니다. 조정석님은 상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감정과 분위기를 전달하려는 노력을 많이 하신 것 같습니다. 도망치고 비상구를 찾아 뛰는 와중에 백수의 서러움을 코믹하게 표한합니다. 임윤아님도 멀어지는 헬리콥터를 보며 배우는 우는데 관객은 웃게 되는 웃픈 상황 표현을 정말 잘하신 것 같습니다.

 

우는 사진은 쓰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둘은 정의롭습니다. 재난영화에서는 어려운 상황을 맞이한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많이 보여줍니다. 사람들을 돕는 사람, 자기 희생을 하는 사람도 있고, 기회만 보다가 자기만 살려는 사람도 보여줍니다. 재난을 맞이한 인간군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재난영화의 목적이기도 하지만, 보다보면 서글프고 답답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에이, 표정만 봐도 화가 난다.

 

 엑시트는 주인공들이 선한 사람들이고, 주위 인물들도 그런 주인공들의 모습을 손놓고 구경만 하고 있지 않습니다. 용남과 의주는 둘만 남은 상황에서 머리를 써서 마네킹을 활용하여 구조헬기를 유인합니다. 성공하는 듯 했지만, 결국 건너편 학원에 갇힌 아이들에게 양보를 하죠.  

 첫번째 구조헬기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가족들만 먼저 보냈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두번째는 백프로 선의에 의한 자발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안타까운데 웃김

 

 잘생기고, 예쁘고, 똑똑하고, 심성까지 착한 젊은이들이 둘씩이나 다른 사람들을 구하다가 위기에 처했는데, 응원하는 마음이 솟아날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구출된 가족들도 놀고 있지 않았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할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해서 고립된 둘을 적극적으로 도우려 합니다. 그런 관심과 노력이 합쳐져야 티끌만한 가능성으로도 기적이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걸 보는 관객들도 박수를 치며 잘했다고 해줄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인물들은 각자 상황에서 최선을 다합니다.

 

 영화 초반, 심상치 않은 사고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파티홀 직원인 의주는 비상벨 울리고, 행사중이던 사람들을 모두 밖으로 대피하도록 안내합니다.


 굉장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일인데도, 대단한 일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대단한 일을 상식적으로 하는, 용기있고 정의로운 분들이 많으면 더 좋아지겠죠.

 

728x90
반응형